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냉이꽃




-송찬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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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도 냉이꽃 앞에 줄 서던 난봉꾼 몇을 알고 있다. 한 생을 하얗게 태우고도 속은 아직 검다며 냉이꽃 귓가에 식은 휘파람 불던 연탄재를 본 적 있다. 달콤한 제 심장을 누군가 송두리째 꺼내간 줄도 모르고 유통 기한 지난 사랑을 고백하던 통조림 깡통을 본 적 있다. 마음을 보여준답시고 왈칵 앙금을 토하던 막걸리병을 본 적도 있다. 녹슬고, 썩고, 비리고, 구린 것들의 수작을 견디며 봄마다 도심의 공터까지 찾아오는 까닭을 냉이꽃에게 물어보았다. 일곱 가지 보석을 박은 빗과 손거울을 사러 떠났던 당신을 데리러 왔다고. 바람참빗과 호수손거울만으로도 충분하니 어서 보드라운 고향 흙가슴으로 돌아가자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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