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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과거·현재 잇는 도시재생...古城 옆 행리단길 만들다

■도시재생의 아이콘 된 수원

자전거택시 타고 골목길 누비면

아늑한 한옥 감상에 공방체험까지

즐길거리 무궁무진한 핫플레이스

주민·공무원·젊은 예술가들 뭉쳐

회색빛 시멘트 칙칙했던 구도심

형형색색 벽화의 거리로 바꿔놔

세계 최초 생태교통 축제 열기도

시민참여형 도시계획 모범 답안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도 등장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권욱기자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권욱기자


지난해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장안사랑채도 행리단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수원시지난해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장안사랑채도 행리단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서울의 이태원 경리단길과 비슷한 곳이 수원시의 ‘행리단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자랑하는 수원시에서 2~3년 전부터 화서문(서문)과 장안문(북문) 주변의 행궁동 일원에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행리단길 또는 행궁동 카페거리’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행리단길 방문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것이 대세다.

사실 수원은 옛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보니 건축 규제가 매우 까다로운 지역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곳에 세인의 주목을 끄는 행리단길이 조성된 것은 다소 의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도시재생이다.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의 모범적 예시로 오늘날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수원의 핫플레이스 ‘행리단길’에는 한옥을 개조한 이색 카페가 즐비해있다. /권욱기자수원의 핫플레이스 ‘행리단길’에는 한옥을 개조한 이색 카페가 즐비해있다. /권욱기자


◇지금도 변신하는 핫 플레이스 ‘경리단길’=
지금도 수원의 행리단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고 있다. 현재 약 90여곳이 영업 중인 이곳은 흑백사진 전문관 ‘봄으로’와 젠틀한 남성을 위한 바버숍 ‘오브러더스(O’brothers)’ 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처음 알려졌다. 수원시의 명물인 자전거택시를 타고 골목골목을 다니면 한옥을 개조한 다양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 공방체험까지 해볼 수 있다. 큰길로 나와 팔달문(남문) 건너편으로 가면 각종 전통시장도 즐길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변화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행궁동을 포함한 수원 구도심은 수원화성이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수원시의 도시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이후부터다. 문화재 인근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성내는 4층, 성 외곽 500m까지는 7층으로 건물의 층수가 엄격하게 제한되기 시작했다. 건축물의 형태도 규제 대상이었다. 성 내외는 지붕을 경사형 지붕으로 짓고 한식 기와를 얹도록 했다.

도시의 다른 지역들이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동안 문화재 보호라는 사명을 받은 행궁동의 시간은 멈춰버렸다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건물이 1970~1980년대 지어졌지만 재건축은 물론 신축도 어려웠다. 마을 사람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자부심보다는 보상을 받아 이곳을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회상한다.



주말이면 행리단길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찬다. /권욱기자주말이면 행리단길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찬다. /권욱기자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
=행리단길은 수원시청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친 걸작품이다. 변화는 마을 주민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부모님과 살던 집을 손수 개조해 미술관을 만들고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작품으로 채워나갔다. 개인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서울까지 가야 했던 수원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도시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됐고 덩달아 수원의 문화예술 자원도 한층 풍족해졌다.


여기에 시의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한몫을 했다. 시가 적극 나서 행궁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한 것. 2010년 5월부터 10월까지 ‘행궁동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주택가 벽화 작업과 기획 전시 등 생활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회색빛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돼 어두웠던 골목 풍경에 이야기가 담긴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져 마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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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는 아주 특이한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세계 최초의 ‘생태교통 축제’다.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살아보기’를 한 것. 행궁동 일원에서는 일체의 자동차 운행이 금지됐고 그 대신 자전거나 친환경 탈거리를 이용하도록 했다. ‘미래에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곽호필 수원시 도시정책실장은 “재생사업 이후 수원시를 찾는 방문객이 세 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높은곳에서 바라 본 수원시 전경. 문화재 인근 건물들은 층수가 낮다./권욱기자높은곳에서 바라 본 수원시 전경. 문화재 인근 건물들은 층수가 낮다./권욱기자


◇뉴딜 정책의 또 다른 이면 ‘소통’
=도시가 바뀐 데는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규제하되 도시 활성화를 위한 투자를 아낌없이 풀고 주민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통을 꾸준히 하자는 것이 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2011년 탄생한 것이 ‘도시정책시민기획단’이다. 청소년 등 마을 주민은 물론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 500명이 팀을 꾸려 도시기본계획의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했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문화재 도시라는 특성에 맞는 개발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의 모범적 예시로 오늘날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도 마을 활성화를 위한 수원시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옥을 짓는 경우에 시에서 1억5,000만원까지 지원해주다 보니 민간 한옥이 최근에는 31채까지 늘었다. 행궁동뿐 아니라 시는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남수동 일대에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문화시설을 포함한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말까지 약 28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원화성의 중심가와 내부 골목을 ‘정조의 길’과 ‘정약용의 길’ 등 역사와 연관된 테마 길로 조성한다. 화홍문 일원에는 관광객을 위한 경관광장과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근대 역사기행 탐방로를 개설할 예정이다.

수원시는 사실 정조와 정약용이라는 걸출한 천재들이 합작해 건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다. 1776년 즉위 후에도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의 융릉으로 옮기며 화성의 축조 임무를 정약용에게 맡겼다. 정약용은 1794년 공사에 착공한 후 3년 만인 1796년에 화성을 완공했다. 완성된 수원화성의 성곽 둘레는 5.7㎞이며 동서남북에 4대 문을 두었다.

수원은 서울에서 기차를 이용하면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수원화성은 물론 수원화성의 대표 성문 팔달문, 왕의 궁궐 밖 생활을 볼 수 있는 화성행궁까지, 수원은 도시 전체에 오늘날까지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이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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