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 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며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한은 ‘연말’로 못 박고, 개최 전제 조건으론 ‘미국의 입장 변화’를 건 것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1박 3일 일정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공간 만들기에 나섰지만 미국은 물론 북한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만 확인돼 북미 대화 재개까지는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2일차 회의에서 시정 연설을 하고, 이를 통해 하노이 핵담판 결렬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북미 정상 상봉과 회담은 불과 불이 오가던 조선반도에 평화정착의 희망을 안겨준 사변적 계기였다”며 “6.12 북미 공동성명은 세기를 이어오며 적대관계에 있던 조미 두 나라가 새로운 관계 역사를 써나간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선언이었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 로켓 시험 발사 중지를 비롯한 중대하고도 의미 있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여 조미 적대 관계 해소의 기본 열쇠인 신뢰구축의 첫걸음을 뗐으며 미국 대통령이 요청한 미군 유골 송환문제를 실현시키는 대범한 조치도 취해 새로운 조미 관계수립의 이정표로 되는 6.12 조미 공동성명을 성실히 이행하려는 의지를 과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무산에 대해 큰 실망을 드러내고, 실패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진행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우리가 전략적 결단과 대용단을 내려 내짚은 걸음들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자아냈다”며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법에 대해서만 머리를 굴리고 회담장에 찾아왔다”며 “우리를 마주하고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준비가 안되어 있었으며 똑똑한 방향과 방법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그러한 궁리로는 백번, 천번 우리와 다시 마주앉는다 해도 우리를 까딱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저들의 잇속을 하나도 챙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의 대륙간탄도 로켓 요격을 가상한 시험이 진행되고 미국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군사연습들이 재개되는 등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역행하는 적대적 움직임들이 노골화 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며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기마련이듯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노골화 될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서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도 무력 재개를 할 수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해석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미 3차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 위원장은 “최근 미국이 제3차 북미 정상 회담을 또다시 생각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며 하지만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의 근본 방도인 적대시 정책 철회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고 오히려 우리를 최대로 압박하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 먹이려고 하는 미국식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며 “미국이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도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날로 더 고조시키는 것은 기름으로 붙는 불을 진화해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고도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3차 북미 정상 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제재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며 미국의 제재 압박을 통한 빅딜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전히 호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생각나면 아무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며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