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빵값 시위




2011년 1월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광장에 100만명의 반정부시위대가 몰려들었다. 군중은 ‘문제는 바로 빵’ ‘우리에게 빵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지방 곳곳에서는 농민들이 야자나무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빵 부족 문제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보조금 축소로 이집트의 주식인 빵값이 폭등하자 참다못한 국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번에는 빵 크기를 줄이고 값싼 옥수수 가루를 사용해 위기를 모면했던 조삼모사 정책도 통하지 않았다. 30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무바라크의 퇴진을 촉발한 ‘빵의 혁명’이었다.


빵은 이집트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져 로마제국 시대에 서양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로마는 매달 시민들에게 빵과 콜로세움 입장권을 무료로 배급해줬다. 제빵사들은 왕의 지시를 받아 식권을 나눠주는 공무원이었다. 군주를 뜻하는 ‘lord’의 어원이 고대 영어 ‘loaf-guardian(빵을 구해오는 사람)’에서 유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일국의 군주가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지 못하면 군주의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이런 일그러진 세태를 빗대 ‘빵과 서커스’로 버티는 제국이라고 풍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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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으로 대변되는 생존권 투쟁은 고비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생활고에 허덕이던 1만5,000명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뉴욕 럿거스광장에서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데서 비롯됐다. 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결한 러시아 대중은 차르에게 빵과 자비를 달라며 호소했다가 유혈 사태를 빚어야 했고 결국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요르단 시민들이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빵 보조금이 줄어들고 소비세마저 인상되자 커다란 빵 모형을 손에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3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빵값을 한꺼번에 3배나 올리겠다고 발표한 데 분노한 국민들의 반정부시위가 커지자 군부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빵값 시위를 통해 새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라는 맹자의 말을 새삼 되새기게 되는 시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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