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5주기] 재난 터져야 정부도 국민도 '반짝 관심'...'유비무환' 없인 '안전한국' 요원하다

사고 잦은 소방 예산은 5년새 60% 늘고

해양경찰 재난안전예산은 3년째 내리막

갈수록 재난 고도화되는데 전문가 부족

꾸준한 관심과 예산 확대로 허점 메워야

지난 5일 강원도 속초시의 한 폐차장이 전날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모두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속초=오승현기자지난 5일 강원도 속초시의 한 폐차장이 전날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모두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속초=오승현기자



강원도 고성 산불 발생 하루 뒤인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은 나흘만에 관계당국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준인 20만명을 돌파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화재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이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지켜본 한 현직 소방관은 “이전에도 소방관들을 중심으로 국가직 전환 청원을 했지만 20만명에는 턱없이 모자랐다”면서 “국민들의 지지가 고맙지만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해야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16일로 세월호 사고 발생 5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가 ‘방재·안전 역사’의 터닝포인트 역할을 했음에도 평소에는 안전에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가 고성 산불처럼 대형 재난이 발생해야 여론이 들끓고, 부랴부랴 제도·시스템을 바꾸거나 예산 확보에 나서는 풍토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잦은 소방 예산은 늘고, 재난 뜸하자 해양 안전은 또 ‘뒷전’=세월호 사고 이후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은 엇비슷한 조직 변화를 겪었다. 사고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해경은 해체되고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었다. 소방방재청도 외청으로 독립한 지 10년만에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로 편입됐다. 두 기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7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해양경찰청과 소방청으로 다시 승격·독립했다.

1515A29 재난안전


비슷한 행보를 밟았지만 예산 지원 규모는 달랐다. 전국 18개 시·도 소방본부의 예산은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해경의 재난 안전 예산은 세월호 사고 이후 반짝 증가했다가 최근 3년 간 줄고 있다. 2014년 3조2,348억원이던 소방예산은 2016년 4조1,217억원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는 5조2,217억원까지 증액됐다. 반면 해경의 재난 안전 예산은 세월호 사고 이듬해에 전년 대비 32.0% 폭등했지만 2016년 0.7% 증가하는데 그쳤고, 2017년에는 전년대비 23.7%나 축소된 후 올해까지 3년 연속 줄었다. 이는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육상에서는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크고 작은 재난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취약한 시스템과 인력·장비에 대한 보강이 꾸준히 이뤄진데 반해 비교적 대규모 재난이 적었던 해상의 경우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5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강원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오토캠핑장에서 소방대원이 화재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동해=연합뉴스지난 5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강원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오토캠핑장에서 소방대원이 화재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동해=연합뉴스


소방 예산 증액과 재난사고 대응 시스템 강화는 이번 고성 산불 진화 과정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세월호 참사와 제천·밀양 사태를 겪은 후 소방청은 ‘과잉대응’에 신경을 쓰고 있다. 소방 대응 단계는 1~3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는 전 소방서의 전체 소방력을 동원하고 2단계는 인접 소방서 3~4곳의 소방력을 동원하며 3단계는 전 시도의 소방력과 인접 시도의 도움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전에는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며 단계를 올렸지만 제천·밀양 사태 이후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다중이용업소 등은 아예 2단계 이상을 미리 걸고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되면 대응 단계를 낮추고 있다.


이번 고성 산불 때도 소방청은 화재 발생 2시간27분 만인 4일 저녁 9시44분 최고 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에서 800대가 넘는 소방차를 동원해 화재를 조기에 진압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밀양·제천 화재 등을 거치면서 ‘과소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낫다’는 판단 하에 압도적인 진압력으로 재난을 초기에 진압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해경도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강화하고 장비와 인력을 확충했지만 추가 예산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경은 95개의 전체 해양파출소를 구조형 파출소로 개선하는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작해 현재 12곳이 교체를 완료했으며 연내 25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연안구조정과 계류시설도 차근 차근 늘려나가고 있지만 해양 재난 ‘골든 타임’을 지키기 위해 함정 및 인력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경에 따르면 보유함정 335척 중 20%인 65척이 노후돼 교체가 시급한 실정이다.

해양경찰이 지난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해상에서 침몰 중인 세월호에 접근해 생존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진도=연합뉴스해양경찰이 지난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해상에서 침몰 중인 세월호에 접근해 생존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진도=연합뉴스


◇갈수록 고도화하는 재난…‘전문성’ 갖춘 인력은 태부족=이처럼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 대응 장비와 시스템이 갖춰졌지만 이를 운용할 사람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여전한 숙제다. 사회 변화에 따라 재난은 고도화하고 있어 소방·해경 및 건축 관련 공무원의 전문성이 제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제천·밀양 화재 후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화재안전특별조사 결과 조사대상 17만3,296개 동 중 10만6,000곳에서 화재안전 부실 요인이 발견됐는데, 분야별로는 전기와 건축 분야의 중대 위반 사항이 각각 51.0%, 43.9%로, 소방 분야(3.4%)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단순히 ‘불을 어떻게 끄고 인명을 어떻게 구조할 것인가’와 ‘재난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전기 시설과 건축 안전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방재 정책을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가 속속 마련되고 있지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용산 상가 붕괴와 동작 상도유치원 붕괴 등에 대한 반성으로 서울 전 자치구에서 출범된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대표적인 예다. 건축안전센터는 일반 건축물·공사장에 안전 점검을 시행하기 위해 고안됐다. 현행 건축법은 지자체의 안전 관리 의무를 연면적 3,000㎡ 이상인 상가나 숙박업소, 연면적 2,000㎡ 이상인 주점·식당에 대해서만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 민간건축물 약 61만동 중 안전점검 의무대상이 아닌 곳은 54만동으로 자치구의 공무원 인력난과 전문성 부족으로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지역건축안전센터는 건축사·구조기술사를 최소 각 1명씩 필수로 채용하고 공무원이 이를 도울 수 있게 해 인력과 전문성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혀왔지만 대부분의 자치구가 구조기술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구조기술사의 연봉이 통상 1억원 안팎이어서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은 그때까지 드러나지 않은 방재 시스템의 허점을 발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재난이 발생한 후 꾸준한 관심과 충분한 예산 지원을 통해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을 늘리면서 허점을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변재현·서종갑기자 humbleness@sedaily.com

변재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