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김재철 동원 회장 인터뷰]"파도와 싸우며 숱한 죽을 고비 생각하니 모든 순간이 구수했다"

농업, 어업, 4차산업 융합한 교육프로그램 계획중

국민 삶에 기여 동원그룹 있어 좋다는 말 듣고 싶어

그룹 이어갈 아들에게 항상 겸손하고 대화하라 주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그의 집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제공=동원그룹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그의 집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제공=동원그룹



“이제 마음이 편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 나보다 더 혁신을 아는 젊은 사람에게 맡겨야 속이 편하지요. 꼬박 50년을 달려왔는데 후련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50주년 기념식은 보고 물러나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룹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저는 이제 동원육영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나의 태생인 농업과 어업과 4차 산업을 융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자 합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나는 앞으로도 정도경영을 펼쳐나갈 동원그룹 뒤에서 사업이 아닌 국가에 유익한 공헌에 기여하겠다”며 “육영재단 이사장으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교육사업에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원그룹은 그의 인생이다. 30대 중반에 동원그룹을 창업한 그는 어느덧 80대 중반이 됐지만 그의 열정과 목소리, 에너지는 50년 전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젊음의 기운이 넘쳤다. 그는 이날 50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아름다운 은퇴를 선언한 후 곧바로 가족과 함께 지방에 있는 그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차분한 시간을 보냈다. 가족 및 그의 비서진과 저녁을 함께한 후 지난 50년을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갈 50년을 새롭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1979년 육영재단을 설립한 후 40년간 수많은 장학생을 배출해냈다고 털어놓았다. 3년 전부터는 11여개 대학들과 손잡고 인성교육에 주력하는 ‘라이프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라이프아카데미는 단편적 지식 습득 교육에서 벗어나 올바른 지(智)·덕(德)·체(體)를 갖춘 대학생을 육성하는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지식과 인성을 갖춘 미래 리더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교육사업을 확대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은 돈을 버는 사업을 했지만 남은 인생은 사람을 얻은 교육사업에 모든 것을 쏟겠다”며 “내가 농업고등학교와 수산대학을 나왔는데 농촌 및 어촌과 4차 산업, 정보기술(IT)을 연계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100년 기업 동원’을 꿈꾼다. 지난 50년처럼 정도와 투명 경영을 이어가되 “더욱더 겸손하고 직원 및 사회와 대화를 나누라”고 주문했다. “창업 당시 비전은 ‘성실한 기업활동’이었지만 10여년 전부터는 ‘새롭게 창조해 사회에 필요한 기업이 되라’는 것이었죠. 우리 동원그룹이 국가와 국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데 기여해 ‘우리나라에 동원그룹이 있어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100년이 지나도 정도와 투명 경영은 동원이 영원히 가져갈 변치 않는 키워드입니다.” 그는 이어서 동원그룹을 이어갈 차남 김남정 부회장에게 “요즘은 사회가 달라져서 옛날식으로는 안 되니 항상 겸손하고 대화를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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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고백했다. “최선을 다하면서 정도경영을 했으니 이만하면 됐지요. 1990년에도 우리나라에서 증여세를 제일 많이 냈잖아요. (웃음). 떳떳하니 잘 살았습니다. 나, 숨기고는 안 살아왔어요.”

그래도 50년을 줄곧 한 길만 달려왔으니 이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후련하면서도 얼마나 아쉬울까. 김 회장은 “전혀 아쉽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저는 그야말로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후련합니다. 아들과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항상 시간이 지난 후 잘할 걸 하고 후회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첫 사회생활로 원양어선을 타며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그였다. 석유파동, IMF 등 경영 파고를 넘어왔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만났던 검은 파도 만큼은 무섭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죽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겠지요. 바다와 파도와 싸우면서 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겨온 나로서는 어떤 상황도 두렵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배를 탈 때는 배가 낡아서 항상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깨달은 것이 ‘바르게 살아야지,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아야지, 손가락질받을 일은 안 하고 살아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죽었으면 끝났을 인생을 지금껏 살아왔으니 이제 웬만한 일에는 겁먹지 않아요. 오히려 힘들었던 상황들을 떠올리면 구수한 생각까지 든답니다.”

사업 초기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을 거뒀던 순간은 꿀맛 같다고 털어놓았다.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4,500톤급 공모선인 ‘동산호’를 건조한 것, 투자 규모가 70억원 이상으로 그룹 전 재산(당시 자본금 20억원)보다 컸던 1982년 한신증권 인수 등이 그것이다.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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