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를 공포에 빠트린 ‘진주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잔인한 묻지마식 살인 난동의 피의자로 체포된 안 모 씨의 지인들이 “안 씨가 평소 조현병을 앓았다”고 진술한 가운데 이전에 발생한 ‘묻지마 범죄’ 피의자에 대한 처벌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안 씨는 이날 오전 4시 29분께 진주 가좌동 한 아파트 4층 본인 집에 불을 지른 뒤 계단으로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 2개를 마구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화재가 발생했음을 스스로 알린 후 노인, 아동, 여성 등 비교적 약자의 급소를 노리는 등 악랄한 면모를 보였다. 난동으로 인해 1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경찰은 “안 씨가 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다는 진술을 주변인들로부터 확보하고 병원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의자가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호소한 묻지마식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보름 전인 지난 9일에는 대구 달서구 거리에서 묻지마 흉기 범행이 있었다. 평소 일면식도 없는 학생의 뒷머리 부분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낮 인천 길거리에서 50대 조현병 환자가 시민 2명을 흉기로 잇따라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6월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40대 남성이 약국에서 난동을 부려 30대 여성 종업원을 살해하고 50대 약사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해당 약사는 지금까지도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에 따르면 살인 범행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피의자의 비율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엔 7.5%를 기록했으며 2016년엔 7.9%, 2017년엔 8.5%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살인 사건에서 사회 불만이 표출돼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비중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우발적 살인의 비중은 2015년 37.7%에서 2017년 41.9%를 차지해 2년 새 4% 이상 증가했다. 이번 ‘진주 묻지마 살인’의 범인으로 체포된 안 씨도 자신의 ‘임금 체불’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해당 사건들의 피의자들이 자신의 정신질환을 빌미로 ‘심신 장애’를 주장해 감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심신 미약’으로 인한 감형은 주취 감형제도에 따른다. 주취 감형제도는 형법 제10조 제2항에 ‘심신장애로 인해 책임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에 대해 형을 감형할 수 있다’고 명시된 내용을 말한다. 정신 질환을 비롯한 음주, 약물 복용 등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에 대해선 책임을 묻기 어려워 형을 줄여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만약 피의자가 심신미약보다 더 심각한 ‘심신상실’로 판단될 경우 그에 따른 범죄행위가 무죄로 판결 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지난해 이른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심신장애에 따른 ‘의무 감경’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거세지자 지난해 11월 여야는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켜 심신미약 ‘의무’ 감경 조항을 폐지했다. 법안에는 심신미약자에 대해 ‘임의적’ 감경규정을 적용해 형법상 책임원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감형 여부는 법관의 재량과 사건의 경중 등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국회의 개정 노력에도 계속해서 ‘묻지마 범행’이 지속해서 증가하면서 주취 감형제도에 대한 국민의 비판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월 ‘금천구 묻지마 폭행’ 사건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범죄 종류나 죄질에 상관없이 범행 당시 음주 상태였던 사건의 비율은 30% 수준에 달한다. 살인사건의 경우 주취자 비율은 45%를 웃돈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취 감형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신병력이 있더라도 범행 도구를 준비하고 범행 장소를 물색하는 것 자체로 심신미약 상태로 보기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대부분 “심신미약 상태의 감형제도를 개정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폐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형법은 기본원칙인 ‘책임 주의 원칙’을 토대로 심신미약 상태를 ‘범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심신장애로 인한 감형제도가 폐지되면 형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진주 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 안 씨가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주민들을 위협했지만 당시 경찰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돌아간 사실이 밝혀지며 경찰의 허술한 대처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경찰이 그동안 상습적으로 주민을 괴롭히고 난동을 부린 점을 파악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이런 끔찍한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평소 안 씨의 위협으로 주민들은 집 앞에다 CCTV까지 설치했고 안 씨의 위협적인 행동과 난동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