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판 오바마와 트럼프 간의 대결’로 주목받은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57) 대통령이 프라보워 수비안토(67)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를 꺾고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조코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마룹 아민 울레마협의회(MUI) 의장은 17일(현지시간) 대선 투표 직후 여론조사기관 인도네시아서베이연구소(LSI)의 표본개표(97.45% 집계 기준)에서 55.38%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후보 프라보워 총재와 러닝메이트인 산디아가 우노 전 자카르타 부지사의 득표율은 44.62%에 그쳤다.
릿방 콤파스, 사이풀 무자니 리서치앤컨설팅(SMRC), 인디카토르 폴리틱 인도네시아, 폴트래킹, 인도바로미터 등 다른 조사기관의 표본개표에서도 조코위 대통령의 득표율은 프라보워 후보를 7.34∼12.32%포인트 차로 앞섰다.
사실상 이 같은 결과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예고됐다. 수차례 조사에서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율은 49∼58%로 프라보워 후보를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프라보워 진영은 여론조사의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이변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사상 최초로 대선·총선·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른 이번 선거의 관심은 지난 2014년에 이어 두 후보가 또다시 격돌하는 5년 임기 대통령선거에 집중됐다. 5년 전에는 조코위 대통령이 53%를 득표해 47%를 얻은 프라보워 대표를 꺾고 2004년 직선제 실시 이후 처음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바 있다.
과거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닮은꼴’로 화제가 됐던 조코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도 친서민 정책으로 농어민과 공장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교육과 복지 혜택을 빈민층으로 확대하고 지난 4년간 새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한 것이 승기를 잡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3,400㎞ 길이의 고속도로, 10개의 신공항을 건설하며 인프라 구축에 힘쓴 것도 지지를 얻는 데 일조했다. 그의 재임 기간에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이 평균 5%대에 머무르며 그가 목표한 7%에 미치지 못했지만 빈민들은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빈곤율을 역대 최저치인 10% 미만으로 낮추는 등 성과도 한몫했다.
반면 군 장성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 프라보워 총재는 2016년 미 대선 때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인도네시아를 다시 위대하게’를 선거구호로 내세우며 이슬람 강경파의 결집을 시도했다. 그는 특히 조코위 정부에서 인도네시아 실업률이 15.8%까지 치솟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최근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과격단체들의 표 동원력이 예상보다 미약했던 것으로 나타나 이 역시 프라보워 총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현지 언론은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하는 무슬림 과격단체 이슬람수호전선(FPI)의 텃밭인 자카르타 시내 투표구 두 곳에서 조코위 대통령이 압승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프라보워 후보 지지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대규모 시위와 소요사태를 벌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나 현재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날 투표는 1억9,200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해 하루 일정으로 진행되는 선거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상·하원 의원 711명을 뽑는 총선, 500여개 지방의회 의원 1만9,817명을 뽑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졌다. 투표용지가 제때 전달되지 못한 일부 지역에서는 18일 투표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식 개표 결과는 다음 달 22일 발표되며 당선자는 오는 10월 취임한다. 다만, 패배한 측이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대통령 당선인 확정 시점이 한 달가량 추가로 늦춰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