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국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이날 ‘외무성 미국 연구소장’ 명의로 논평을 통해 “폼페이오가 회담에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쓰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하노이회담에서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치적’에 대한 욕심에 기대 북미협상을 진행하려고 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권 국장은 또 “이 기회에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 시정연설에서 천명하신 대미입장에 담긴 뜻을 다시 한번 폼페이오에게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면서 “그 뜻인즉 미국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떠민 근원, 비핵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 손으로 올해 말까지 치워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조선반도 정세가 어떻게 번져지겠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미 신뢰관계가 회복돼야 비핵화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북한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에 대해 미국이 올해 말 전에 계산법을 바꾸고 화답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으로 만 사람이 명백히 이해하고 있는 때에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만이 혼자 연말까지 미조(미북) 사이의 실무협상을 끝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여 사람들의 조소를 자아내고 있다”고도 말했다. 권 국장은 북미 간 비공식 창구인 ‘뉴욕채널’을 담당하는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펠로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날 북한의 메시지는 하노이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미 실무협상단 총책임자인 폼페이오 장관에게 돌리고 김 위원장을 ‘독재자’로 표현한 데 따른 앙금의 표현인 동시에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협상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의 움직임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판을 흔드는 북한의 돌발 행보나 북한식 시간표에 휘둘리지 않고 빅딜론을 고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3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러시아 크렘린궁은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난다”면서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김 위원장이 4월 하반기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오는 24일께 8년 만에 북러 정상회담을 열고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임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북러 접경 철교를 통해 북한에서 러시아로 직접 넘어가는 대신 평양에서 출발해 중국 투먼과 훈춘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이고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가며 중국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우인·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