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17일자 1면에 ‘올해 정부가 2만개의 4세대(4G) 기지국 건설 지원’이라는 기사를 큼지막하게 게재했다. 전일 공개된 공업정보화부·재정부의 발표를 전한 것으로, 중국 내 오지와 변경 지역을 중심으로 통신복지를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에서 5세대(5G)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셈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사회안정 효과를 노리는 중국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한국과 미국이 5G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일본도 내년 서비스 개시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중국의 상황은 오리무중이다. 당초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통신 3사는 올해 5G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부터 본격 상용화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분위기다. 5G 관련 통신장비 문제로 미국과 격한 대치를 벌인 중국이기에 이러한 지연이 더 주목을 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서비스 영역이 워낙 광대한 데서 비롯된 수익구조 마련의 어려움과 함께 중국 정부가 통신요금을 억누르는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물가불안을 이유로 이동통신 요금을 올리지 말 것을 각 통신사들에 종용하고 있다.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브리핑을 통해 “일부에서 초고속 5G 사용 등과 관련해 폭탄요금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과 달리 사실상 기존 서비스 요금과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커창 총리도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모바일데이터 요금을 평균 20% 이상 더 인하하는 등 요금 인하에 대해 소비자가 명백히 알도록 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당분간 중국 당국이 이동통신 요금을 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하를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5G 서비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 통신사들이 5G 서비스를 실시하면 수익구조가 악화하게 된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여기에 이미 포화상태인 중국 이동통신시장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지적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자는 15억6,610만명에 이른다. 인구가 14억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보다 많은 휴대폰이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휴대폰 판매가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것도 부담이다. 이미 살 만한 사람은 모두 휴대폰을 구매한 상황에서 다시 5G폰을 사기에는 중국인들의 소득 수준이 따라주지 못한다.
이에 따라 ‘우리가 세계 최고’라며 5G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 관영매체들과 달리 정작 통신사들은 한발 물러서 있다. 중국 정보기술(IT) 매체에 따르면 중국 3대 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이 최근 공개한 올해 5G 투자지출 예산은 모두 기존 예상치에 미달했다. 보도에 따르면 차이나텔레콤은 올해 5G 부문에 90억위안(약 1조5,300억원)을, 차이나유니콤은 60억~80억위안을 각각 책정했다. 차이나모바일의 경우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170억위안 규모로 추산된다. 3사를 더해 총 320억~340억위안의 예산이 올해 투입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3사의 기존 투자 예측치인 500억~1,000억위안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이다. 5G 기지국이 4G의 2배가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투자비는 크게 늘어나는 반면 수익성은 떨어져 통신사들은 저마다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 통신사 임원은 “데이터 비용을 낮추다 보니 매출과 이익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용 서비스의 불확실성은 5G 휴대폰 제조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3위 업체인 화웨이는 최근 열린 ‘애널리스트 서밋’에서 오는 7월 5G 휴대폰을 내놓겠다고 공개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삼성·LG 등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다만 화웨이는 단말기 출시 계획만 공개했을 뿐 이를 중국 내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밝히지 않았다. 5G 휴대폰 출시가 해외 시장으로 국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전국단위의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진한 대신 상하이 등 주요 지방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 기술 선점을 위해 5G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5G 통신 서비스보다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5G를 활용한 산업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5G 투자에 가장 앞선 지방정부는 상하이다. KOTRA 상하이무역관 및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상하이시는 ‘5G 스마트 도시’를 목표로 최근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상하이 훙차오기차역은 아예 세계 최초의 ‘스마트 기차역’로 탈바꿈했다. 와이탄이나 루자쭈이금융무역구 등은 5G 시범지구로 지정됐다. 상하이 시정부는 2020년까지 시내에 5G 기지국 1만개를 설치해 5G 정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밖에 화웨이 본사가 있는 광둥성 선전에는 ‘5G 스마트 호텔’이 문을 열었고 지하철 안면인식 결제 시스템이 구축됐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도 지하철에 5G를 활용한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저장성 항저우는 ‘5G 이노베이션 파크’를 설립해 관련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광활한 영토와 인구 규모를 감안해 일부 시범지역에서 다양한 시험을 거친 후 성공사례를 확대해가는 중국식 경제개발 방식을 5G 산업에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KOTRA 상하이무역관 관계자는 “차이나텔레콤 측은 상하이를 5G 거점으로 보고 있다”며 “대도시의 5G 및 5G 연계산업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확장하는 전략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