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부터 늘 그의 주변에는 크레파스, 색연필, 수채화물감이 가득했다. 머릿속에 무언가 영감이 떠오르면 언제든 흰 도화지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학창시절은 음악과 함께했다. 교내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몸으로 감정을 한껏 표현하는가 하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활동하며 시간을 보냈다. 틈나는 시간에는 빵 굽는 법부터 갖가지 요리 체험도 즐겼다. 문득 안 배운 것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유년시절부터 다채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조금씩 완성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의 스테디셀러 ‘생각의 탄생(Spark of genius)’은 그의 경험에서 태어났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는 중국의 격언을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생각이 탄생하고 어떻게 창의성이 발현되는지를 가장 잘 요약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융합형 과학자’로 꼽히는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역사를 바꾼 과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상상해 위대한 발견에 이르렀는지 분석한 ‘디스커버링(Discovering·과학자의 생각법)’과 생각의 도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생각의 탄생’ 등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친근하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오는 5월14일부터 사흘간 열릴 서울포럼 2019에서 첫날 토론과 마지막 날 특별강연을 맡는다. 특히 그는 이튿날인 15일 과학 영재들과 함께하는 유스포럼에서 이 놀라운 발견(Discovering)이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과 과학의 연계성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할 예정이다. 그는 서울포럼 2019의 주제인 ‘다시 기초과학이다:대한민국 혁신성장 플랫폼’을 그의 생각 도구로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복합적인 것들이 많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여러 관점이 한데 뒤섞여 잘못된 정보도 넘쳐난다”며 “(이처럼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도대체 내 호기심을 어디에 투영시켜야 문제 해결에 효과적일지 제대로 알고 스스로 던진 질문에 유용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필수 지식을 갖추는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서울경제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본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과학의 본질은 같다”며 “유년시절 다방면의 예술적 활동과 경험은 상상력의 근간이자 훗날 과학자의 삶을 걷는 데 상당한 밑천이 됐다”고 말했다. 소위 내 (전문) 분야에 가두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역시 다채로웠고 모순·변칙(anomalies) 현상을 알아보는 눈도 생겼다는 말이다. 그는 “독창적인 과학자는 여러 학문의 통합과 ‘전체적 사고’를 선호했다”고 강조했다.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주장은 이미 앞선 여러 과학자가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아는 유명과학자의 대부분은 특히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음악에,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미생물을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든 최초 과학자이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 등 놀라운 발견에 이른 최고 과학자들의 취미활동을 조사해보면 미술과 음악, 무용, 소설, 시 창작 등 여러 창조적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한 분야에 정통한 맹목적인 집중 훈련식의 인재양성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를 비롯해 그보다 먼저 길을 걸은 유수의 과학자들 절대다수는 실험실에서 끙끙 앓기보다 예술과 호흡하며 놀라운 발견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 기초과학의 현실은 실험실에 갇혀버렸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해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게 진짜 과학”이라며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구할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데 55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 데 단 5분만 쓰겠다고 말한 것이 쉬운 예”라고 말했다. 맹목적인 답을 쫓기보다 통찰력이 깃든 질문과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질문을 만드는 방법을 간접경험이 아닌 직접경험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위대한 과학자들은 물건을 만들며 문자 그대로 다양한 물질을 ‘느꼈다(feel)’”며 “추리를 거치지 않고 우선은 대상을 몸소 직접 파악하는 ‘직관’을 허용하는 기회가 많아지면 질문에 힘이 생기고 놀라운 발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역작 ‘생각의 탄생’에서 몸으로 (느끼며) 생각하기·관찰하기·상상하기 등 과학자들이 쓰는 열 세 가지 ‘ 생각의 도구’를 구체화했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는 새 발견에 이를 수 있는 특이한(idiosyncratic) 생각 훈련법을 소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