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구시(求是)’ 올해 4월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담화인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견지와 발전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실었다. 이후 관영매체들은 앞다퉈 이를 소개했고 당 간부들을 중심으로 학습 열기도 나타났다. 이 담화는 원래 지난 2013년 1월15일 새로 선출된 당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을 대상으로 제18차 전당대회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고 성급 간부 이상에게만 제한적으로 공유됐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이것을 공개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중국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원인을 역사허무주의에 빠져 사상적 혼란을 초래한 데서 찾았다. 이를 위해 ‘수릉의 젊은이가 한단에 가서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가, 걸음걸이를 배우지도 못하고 옛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기어 돌아왔다’는 ‘장자’의 한단의 걸음걸이를 인용했다. 즉 사회주의 노선, 마르크스주의 발전의 문제는 중국 공산당의 흥망성쇠와 직결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 하나,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덩샤오핑 동지는 마오쩌둥 사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언급에 주목하고 개혁개방 전과 후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과거는 부정과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당 간부들은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향락주의·사리사욕·형식주의 행위를 근절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통해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라는 루쉰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미래 중국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모험주의에 빠져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 조정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주문했다.
사실 시진핑 체제가 등장한 후 국가와 이념의 역할은 더욱 강화됐다. 2017년 헌법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긴 이름의 이념체계를 선보였고 당정 분리라는 중국식 정치개혁이 후퇴했으며 국가감찰위원회를 출범시켜 사회적 감시망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사회의 자율성은 크게 위축됐다. 대외정책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감싸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인류 운명 공동체, 신형 국제관계,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중국제조 2025 등 중국식 정책 담론을 쏟아내면서 중국의 길을 정책화하고자 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의 오랜 책사인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을 권력의 정점에 세워 중국의 길을 진두지휘하게 했다.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지방정부를 운영한 경험이 없고 당 경력도 짧으며 순환보직도 겪지 않았던 그를 발탁한 것은 시진핑 체제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이미 6년 전부터 준비됐으나 지금 이를 공개한 것은 올해가 과학과 민주주의로 무장한 청년들이 중국 현대사를 열었던 5·4운동 100주년이자 체제개혁을 요구한 톈안먼사건이 발발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미중 무역마찰 속에서 중국의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외교적 체면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자신의 체제와 제도 그리고 이념에 대한 신념을 환기하는 한편 국력을 증가시키고 생활의 질을 높여 와신상담의 길을 독려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미중 무역마찰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겠지만 중국이 체제·제도·담론·규범·표준을 둘러싼 경쟁에서 손을 떼지 않을 것이며 기술 냉전에서 이겨 오는 2021년 중국공산당 100년을 맞아 사회주의를 다시 호명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미중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 사회주의 중국의 부상, 유동성이 높은 한반도 상황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키우고 생각을 담론으로 바꾸고 이를 정책화하는 한국형 대전략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