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교법은 종교·인종·국가를 떠나, 배운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나 받아들여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고, 국가가 행복하고 세계가 행복해질 수 있으니 대각개교절이 원불교 교단만의 경사가 아니라 세계 인류가 경축하는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전산(田山) 김주원(70·사진) 종법사는 지난 23일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원불교 중앙총부 종법원에서 원기 104년 대각개교절을 기념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첫 인사를 전했다. 오는 28일인 대각개교절은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1891~1943)의 대각(大覺·깨달음)과 원불교의 개교를 기념하는 날이다. 원불교는 교조의 탄생일이 아닌 깨달음의 날을 최대 경축일로 삼는다.
전산 종법사는 “절대자를 모시는 종교는 멀어질 수 있지만, 원불교는 절대자가 아닌 ‘생활 속의 선(禪)’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라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해득실이 엇갈리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수련하는 원불교의 교리가 현대인에게 다가가고 사회에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산 종법사는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라는 법언을 꺼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당부했다. “‘은생어해 해생어은’은 은혜를 뜻하는 은이 곧 해악을 뜻하는 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해가 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 그는 “쉽게 말해 낮과 밤은 떨어져 있지만,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낮이 돌아오듯 둘은 반드시 서로 뒤따른다. 좋은 것이 오면 좋지 않은 것이 뒤따르는데 보통 이를 보지 못하고 기뻐하기만 하고, 좋지 않은 것이 오면 후에 좋은 것이 찾아오는데도 슬퍼하기만 한다”고 말했다. 진주 아파트 방화사건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분노조절 장애도 원불교의 교리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종법사의 생각이다. 그는 “정말 사고가 날 상황에서는 화를 멈추기 어려우니 평소에 멈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분노와 화를 단번에 다스릴 수는 없지만 ‘일단 멈춤’을 계속 시도하면 작은 분노를 비롯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도 다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의 소박한 수련법으로 서랍을 열 때도 여러 번에 걸쳐 조금 멈췄다 열거나, 신발을 벗을 때도 한 번에 벗는 게 아니라 천천히 벗고 가지런히 놓는 연습을 하다 보면 급한 마음을 비롯해 분노로 인한 사고까지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개교 100년을 넘긴 원불교가 올해는 그간 제기된 변화의 요구를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우선 올해 대학 원불교학과 입학 때 여성 예비교우들이 작성해 제출해야 했던 이른바 ‘독신서약서’를 폐지했다. 교단에서 ‘정녀(貞女)지원서’로 부르는 이 서약서는 여성 교무가 평생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원불교 교헌을 개정해 여성교무의 결혼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산 종법사는 “(정남정녀 관련 교헌 개정을) 올해 안에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상당한 합의가 돼 가고 있지만, 법규를 고친 뒤로 교단에 정착하기까지 점진적일 수밖에 없고 20∼30년은 흘러야 정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원불교는 대각개교절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26일부터 5월 5일까지 원불교 익산성지에서는 ‘제12회 깨달음의 빛’ 축제를 연다. ‘근대문화유산 빛조명 순례길’ ‘철학이 있는 영화산책’ ‘걷고 멈추고 감사하라’는 주제로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익산=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원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