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후폭풍은 24일에도 여의도 의사당역을 숨 가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25일 열리는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사보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했습니다. 사보임은 국회 상임위 위원을 교체하는 절차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 등을 골자로 한 패스트트랙은 전날 각 당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열차가 출발하는가 했는데 오신환 의원 변수가 생긴 겁니다.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선 소관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개특위 소속 위원 총 18명 중 11명이 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사개특위 구성은 민주당 8명, 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2명, 민주평화당 1명입니다. 패스트트랙을 추인한 여야4당이 9명에 불과해 바른미래당 권은희·오신환 의원 중 한 명만 반대해도 패스트트랙은 부결됩니다.
일각에서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권은희·오신환 의원을 이미 잘 설득해 패스트트랙 지정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오 의원은 이날 새벽 페이스북에 “추인된 의견은 온전한 당의 입장이 아닌 절반의 입장이며, 그 결과 당이 또다시 혼돈과 분열의 위기 앞에 섰다”며 “당의 분열을 막고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공수처법 신속처리안건 지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패스트트랙을 관철시키려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은 오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사보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합니다. 김 원내대표는 “오늘 오 의원을 만나 진의를 확인하고 마지막까지 설득하겠다”면서도 “본인 소신과 다르더라도 의총 추인 결과에 따르는 게 당 소속 의원의 도리다. 합의문에 명시된 시한(25일)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때부터 사보임이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합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혜훈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사보임을 하면)사람이 아니다”라고 했고, 하태경 의원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체를 강행하면 천벌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사보임이 불가하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같은 국회법을 두고 사보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갈리며 바른미래당 내홍은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까지 오 의원의 사보임이 왜 정국을 가르는 변수가 되는지에 대해 다소 길게 설명을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25일 사개특위에서 오 의원은 소신대로 반대를 하고 패스트트랙을 저지시키면 됐을 텐데 하루 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논란을 키웠을까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직후 “(오 의원의 발언은)‘나를 사·보임시켜달라’고 말한 것”이라며 “원내대표가 적절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보임을 원한 발언이라는 해석이지만 반대로 오 의원은 사보임에 결사반대입니다. 이날 오후까지도 사보임 반대 입장을 가진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를 압박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오 의원의 사보임을 막아야 한다며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문 의장은 저혈당 쇼크 증세로 병원에 후송됐습니다.
바른미래당의 창당 주역인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당의 최고 지분을 가진 두 정치인이 내걸었던 공수처 설치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데 소속당 의원이 반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 겁니다. 아울러 선거제 개편 없이는 내년 총선에서 바른미래당은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 선거제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의원은 유승민·이혜훈·지상욱·하태경 등 10명 가량으로 전해집니다. 오 의원의 이날 새벽 페이스북 메시지와 바른정당계의 반발, 그리고 한국당의 국회의장실 항의 방문은 공교롭게도 순차적이고 일사분란했습니다. 뜻밖의 공조겠지만 내년 총선에서 이들 의원의 소속당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바른미래당은 원심력이 한국당은 구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