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흔들었던, 왜곡했던, 조롱했던 사회구조는 개선됐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영화관에서 ‘노무현과 바보들’을 관람한 후 동석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총리는 영화 제작자, 노무현재단 장학생 및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
이 총리는 “무거운 눌림 같은 걸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았던가’, ‘우리가 다시 깨우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가 끝난 후엔 동석자들과 영화 감상평을 나누고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만남은 1시간 40분 가까이 진행됐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며 “그 복합성, 그걸 이 영화가 그대로 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게 희망”이라며 “바보도 대통령 될 수 있다는 희망, 권위주의와 지역주의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희망, 노사모로 대표되는 보통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은 반면에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며 “그분이 당한 수많은 조롱, 경멸 턱없는 왜곡, 그걸 막아내지 못한 우리의 무력감 여기서 오는 고통, 끝내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자책 거기서 오는 고통 그걸 주셨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그리고 각성을 주신다”며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민주주의가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한번 얻으면 당연히 우리 것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바이 더 피플(by the people)’은 부단한 과정에서 온다는 각성, 그것을 알려주셨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학생들에게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정치의 기교를 먼저 배우지 말라”며 “공부부터 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정치는 기교보다 지향”이라며 “뭘 지향하는가, 지향을 향해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하는가, 지향을 향해서 구체적인 공동체 문제를 하나라도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하려고 고민이라도 하는가, 이것의 축적이 좋은 정치인으로 가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도 소개했다. 이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이) 후보이셨을 적에 (대변인으로서) 유일하게 야단맞은 일이 있다”며 “대통령 후보 TV토론을 앞두고 준비하다가 넥타이는 뭘 어떻게, 표정은 어떻게, 이 얘기를 했더니 역정을 내셨다”고 회상했다. 이 총리는 “보통 정치인들은 아직도 그게 중요하다고 믿는다”며 “국민들은 뒷모습도 다 본다. 꾸민다고 해서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노 전 대통령께선) 일찌감치 간파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당시 반대표를 던졌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는 질문이 나오자 그에 대한 답도 내놓았다. 이 총리는 “특별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정치가 그럴 것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이제까지 동지였는데, 갈라졌다고 설령 밉다 하더라도 말로라도 안 미운 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 정치가 그걸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당시 열린우리당 창당을 축하하고, 이해찬 당시 총리의 지명을 잘 된 인사라고 평했다가 당내에서 ‘회색분자’ 취급당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이 총리는 새천년민주당이 친노 중심의 열린우리당과 분당하던 당시 민주당에 잔류했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한나라당 주도로 진행됐던 노무현 탄핵소추안에 이 총리는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개표 결과 찬성 193표, 반대는 단 2표였다.
한편 이 총리는 다음 달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추도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작년 9주기 당시엔 국정 일정으로 인해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