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간 대립이 전 분야로 확대되는 가운데 ‘북극’이 양국 충돌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확장한 ‘북극 실크로드’를 계획·추진하면서 미국이 “북극해가 남중국해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교통로이자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된 북극권을 둘러싼 주요국들의 패권 다툼이 미중 갈등과 맞물려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충돌 무대는 6일(현지시간)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진행된 제17차 북극이사회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대표로 참가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금 북극은 각 세력이 겨루는 지역이 됐다”며 향후 북극 논의에서 중국을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다른 지역에서 행한 공격적 행동방식은 앞으로 (중국이) 북극을 어떻게 다룰지를 보여준다”면서 “북극해가 인근 국가의 군비경쟁과 영유권 주장으로 혼란스러운 또 하나의 남중국해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반문했다. 남중국해는 중국·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의 영유권 분쟁 지역으로 중국과 주변국 간 무력충돌도 적잖이 벌어진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중국의 무분별한 북극권 투자를 거론하며 “에티오피아에서 중국이 건설한 도로가 몇 년 후 무너지고 위험해진 것처럼 북극의 인프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은 뒤 중국이 초래하는 ‘생태학적 파괴’에 북극 환경이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북극이사회에 참석한 가오펑 외교부 북극 특별대표는 “그(폼페이오)가 세력 간의 경쟁을 말하는데 누가 더 많은 친구를 얻는지 두고 보자”고 맞비난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중국이 러시아와 아이슬란드 등 적지 않은 우군을 확보하고 있으며 북극에 대한 권리도 가졌다는 주장인 셈이다.
북극이사회는 북극을 에워싼 미국·러시아·캐나다·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스웨덴 등 8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은 인도·한국·싱가포르·이탈리아·일본 등과 함께 의결권이 없는 옵서버 국가다. 사실상 북극이사회 소속 8개국이 배타적으로 북극권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러한 카르텔에 중국식 경제블록인 ‘일대일로’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중앙아시아 내륙과 남아시아 해상을 지나는 기존 일대일로에 북극권까지 포함된다면 완벽하게 유라시아 대륙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을 ‘북극 인접국가(near-arctic nation)’로 선언하면서 ‘북극 정책백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북극 백서에서 중국은 북극항로를 ‘북극 실크로드’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이 북극권에 쏟아부은 투자금은 90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일대일로와 연결되면서 투자규모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 홀로 대항하기 버거운 러시아는 중국의 개입을 반기며 천연가스 등 자원 개발과 북극항로 개발에서 중국과 손을 잡고 있다. 중국은 아이슬란드·노르웨이와도 연구기지 확보와 쇄빙선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그린란드의 국제공항 건설사업 참여도 추진했으나 이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은 북극권까지 눈독을 들이는 중국을 저지하기 위한 전방위적 공세를 펴고 있다. 남중국해 등 중국 인근 분쟁지역과 달리 북극권은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와 직접 맞닿아 있다. 이곳에 중국이 진출한다면 미국의 핵심 이익이 흔들린다고 보는 것이다. 이날 북극이사회에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오직 북극 국가와 비(非)북극 국가만 존재한다. 제3의 카테고리는 없다”며 “다른 범주를 주장해도 중국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최근 공개된 미 국방부 연차보고서에서는 중국 군사력의 북극 투사를 우려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북극권에 과학연구시설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이 지역에 핵잠수함을 배치하는 등 실제 중국군이 활동하게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