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체들이 ‘중국 포비아’에 흔들리고 있다.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001440)의 인수를 중국 대형 전선업체가 추진하며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에 초고압 케이블 전선 기술이 유출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전선업체들의 경쟁력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자칫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7일 전선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한전선 소유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최근 대한전선 매각을 위해 중국 5대 전선업체인 칭다오한허케이블(Qingdao Hanhe Cable), 티비이에이(TBEA), 흥통(Hengtong), 바오선 초고압(Baosheng High-Voltage Cable Co), ZTT 등에 인수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가운데 한 업체는 직접 IMMPE와 미팅을 하고 인수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MMPE는 지난 2015년 3,000억원을 대한전선에 투자해 67.1%의 지분을 확보했으며 최근 크레디트스위스(CS)를 매각주간사로 정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18일에는 대한전선 지분 5.84%(5,00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해 475억원을 회수하는 등 매각 작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국내 전선업계 2위인 대한전선이 중국으로 매각될 경우 이 중국 업체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전선업계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기술 유출이다. 대한전선은 500킬로볼트(㎸)급 이상 초고압 케이블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의 LS(006260)전선과 대한전선을 포함해 5개 나라 정도가 이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LS전선과 대한전선을 포함해 이탈리아의 프리스미안, 프랑스의 넥상스, 덴마크의 엔케이티, 일본의 스미토모 등 7개 업체만이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다. 중국 업체 중에서는 현재 500㎸급 이상 초고압 케이블 전선을 만드는 곳이 아직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전선이 중국 업체에 인수되면 초고압 케이블 전선 기술이 고스란히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른 업계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다. 한 예로 디스플레이 업계는 과거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인력이 중국 기업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LCD 디스플레이 시장의 주도권을 순식간에 중국에 내줬다.
특히 초고압 케이블 시장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500㎸급 이상 초고압 케이블은 국가 기간망으로 송전에 사용되며 특히 동북아 슈퍼그리드 등 국가 전력망 연계에 사용되는 500㎸ 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낮은 비용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국가에서 전기 생산 비용이 높은 국가로 전기를 보내는 시대가 되면서 저소실 대용량 장거리 전송이 가능한 HVDC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선업계에 따르면 2016~2018년 전 세계 500㎸급 초고압 케이블 시장 규모는 2조4,000억원 수준이었으나 2019~2021년에는 11조원으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업체의 진출로 국내 전선업계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국내 주요 전선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이 2~3% 수준이며 중소업체들은 1% 남짓에 불과하다. 특히 갈수록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이번에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만 하더라도 IMMPE에 인수된 후 영업이익률이 3%대로 개선되는 등 잠시 회복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2.9%로 다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 업체가 국내 전선 시장에 침투하게 되면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특히 중소업체들은 버티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안보와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초고압 송전선로는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근간으로 고장이나 정전 시 국민 생활과 국가 안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전력 인프라 기술을 국가 안보 기술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