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을 높이려면 육아·보육·교육·주택·비용절감 등 사회 전체를 가족친화적 환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미하엘 라이터러(63) 주한 유럽연합(EU)대사는 최근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보다 저출산·고령화를 먼저 겪은 유럽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주한 EU대표부가 오는 28~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EU 강소기업의 인테리어 제품을 소개하는 ‘EU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 저출산·고령화 해법도 모색할 겸 그를 만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이 0.98명으로 떨어진 데 이어 오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저출산을 우려하지만 출산율이 2016년 기준 프랑스(1.92명), 영국(1.79명), 독일(1.6명) 등은 한국보다 상당히 양호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대유러피언디자인전시회를 여는데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맞나.
△한국에서 주52시간제가 실시되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 등 각국의 문화와 스타일을 담은 다품종 소량 디자인 제품을 선보인다. 다행히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준다. 한국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관심이 많다. 외식도 많이 하고 집을 꾸미고 싶은 욕구도 늘어난다. 집을 좀 더 근사하고 독특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욕구에 어필할 것이다.
-한국에서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하다. 유럽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나.
△여성 입장에서 가족친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경력 단절 없이 출산 후 복직할 수 있고 남편도 육아휴직할 수 있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잘돼 있어야 한다. 주택이나 자녀 교육에도 많은 비용이 드는데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유럽은 미리 고민한 문제다. 아기를 낳으면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데 유럽에서는 육아를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싱글 맘이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도 한다. 한국은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는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는데 여성이 경제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해법을 모색한다면.
△유럽은 육아·보육 여건이 비교적 잘돼 있고 교육비도 한국보다 훨씬 적게 든다. 이민자도 많이 수용해왔다. 한국은 북한 때문에 대륙과 단절돼 섬이나 마찬가지인데 유럽은 개방돼 있다. 지난 4~5년간 유럽은 이민에 난민까지 부담이 커졌으나 28개 회원국 중 일자리, 학업, 퇴직 후 생활 등 이동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고령화와 관련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퇴직연령을 65세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말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총리가 정한 것이다. 당시 수명이 60~65세였다.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서 노동연령을 좀 더 늘리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81세가량인데 65~70세까지도 일할 수 있는 것 아니냐.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질 낮은 일자리는 위험이 커져 평생교육 등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로봇 도입 등으로 자동화되면서 여가가 많이 생기는데 일자리의 성격이 변해 고급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주한 EU대표부는 전기차를 이용한다. 유럽의 친환경 지속가능 경제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이용하다가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자동차 없는 날’ 행사를 하며 친환경차만 쓰기로 서명했다.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는데 여전히 디젤버스가 많은 문제는 개선했으면 한다. 전기버스는 대형 배터리를 탑재하거나 트램처럼 위에 전기선을 연결하거나 수소버스를 활용하는 등 3가지 형태가 있다. 다만 전기를 화력발전을 통해 생산한다면 상당한 오염원을 배출하는 셈이다. 풍력·수력·태양광 등 재생 가능 에너지와의 믹스가 필요하다. 유럽은 재사용·재활용 등 친환경 순환경제를 추구하고 수질과 대기를 엄격하게 관리해 환경 기술이 뛰어나다.
-유럽의 에너지정책은.
△국가마다 다른데 오스트리아는 산이나 강이 있어 수력발전을 많이 해 원전을 전혀 쓰지 않는다. 제 고향인 인스부르크는 100% 재생 가능 에너지를 쓰는데 지역마다 다르다. 독일은 원전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정답은 없고 상황별로 어떻게 믹스하느냐가 중요하다.
-미세먼지·플라스틱 등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해양은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심해 어류가 먹고 이를 사람이 먹게 되는데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지난 3월 한·EU 간 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놓고 기후 행동 프로젝트 출범식도 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지 8년 됐는데 EU가 개정을 주장하는데.
△그동안 무역량이 48% 늘어 통상 규모가 한해 1,000억유로에 달한다. EU는 한국의 3대 통상국이다. 한국은 지난 2년간 EU에 흑자를 거뒀는데 이번 유러피언디자인전시회를 통해 적자 폭을 조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웃음) FTA 조항을 조금 더 현대화했으면 한다. 중소기업·투자· e커머스 등의 조항을 예로 들 수 있다. 양쪽 통상당국이 얼마 전 만났는데 상당히 긍정적으로 논의했다고 들었고 저도 조만간 한국 정부와 만날 것이다. 일방적으로 푸시할 수 없고 공통 관심사를 갖고 같이 가야 한다.
-통상·국제정치 전문가인데 한국경제에 조언하면.
△국제적으로 침체는 아니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다. 각국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지속 가능 경제와 함께 친환경 경제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다.
-신산업 육성은.
△정부는 스타트업 등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유럽은 스타트업의 실패를 용인하는 편이라면 한국에서는 좀 그렇지 않다. 신제품을 내놓으려면 금융지원도 필요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소위 구글세에 대해 한국과 유럽이 공동 대처할 수 있나.
△유럽에서 구글이나 아마존 등 글로벌 업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23~26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논의가 잠정 중단됐다. 다국적기업은 한 국가에서 세금을 매기면 다른 국가로 베이스를 옮긴다. EU는 5억700만명의 시장이 있어 유럽의 조치를 무시할 수 없다. 글쎄 공동대처는 잘 모르겠다.
-북미관계나 남북관계, 한일관계에 조언한다면.
△북한에는 EU 7개 회원국의 대사관이 있다. 유럽은 유엔(UN) 상임이사국의 합의에 따른 비핵화를 원한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외교 프로세스를 통해 해야 한다. 힘으로 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바람직한 협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 관심사가 EU 디자인이다.(웃음) 민주주의 국가는 과거를 뒤로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럽은 이런 노력을 했다. 물론 EU 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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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인스브루크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2년부터 외교관으로 코트디부아르·일본·스위스·벨기에 등에서 근무했다. 2017년 2월 한국에 부임해 임기가 1년 반 남았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앞두고 EU 집행위에서 행사를 준비했고 2002년까지 후속 조치를 챙긴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