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북핵 협상의 엔드 게임

홍병문 논설위원

北, 핵보유국 지위 인정받으면서

원하는 것 얻는 꽃놀이패 노린듯

비핵화없이는 보상 없다는 사실

北에 명확히 인식시킬 전략 필요




모든 협상 게임에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득을 얻으려는 수 싸움과 셈법의 전략이 따른다.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엔드 게임’에는 슈퍼 히어로 어벤져스와 악의 상징인 타노스 간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펼쳐진다. 영화 속 어벤져스 히어로들이 패배한다면 잃게 되는 손실은 인류에게 치명적이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할 뿐이다. 스포일러라는 예기치 못한 기습을 당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온 우리 현실에서는 어벤져스와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게임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북핵 협상이다.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무역 협상은 이에 비하면 한가한 게임에 가깝다. 협상에서 실패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비극은 우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협상 전문가나 경제학자 혹은 심리학자 입장에서 보면 북핵 협상은 일반적인 게임 이론으로는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어떤 결론이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한 대 두들겨 맞는다.” 과거 6자회담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해준 북한에 대한 이야기다. 20여년 넘게 북한과 협상하면서 얻은 진리 한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북한에 대해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그들과의 협상이나 대화 과정에서 단정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 사실 한 가지뿐”이라고 했다. 글로벌 외교가에서도 어지간한 게임 이론은 북한에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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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은 톱다운(top-down·하향식)이든 보텀업(bottom-up·상향식)이든 여러 방식이 동원됐다. 6자회담은 그 중 협상 당사자들이 가장 합리적이면서 그럴듯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한 협상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6자회담도 결국 한편의 보여 주기용 쇼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크다. 과거 6자회담 현장을 취재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6자회담에 대한 비판론은 합리적인 의심일 수 있다.

현재 이뤄지는 전례 없는 트럼프식 북핵 협상에 대한 평가는 아직 진행형이다. 적어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는 극적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놀랍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월전략을 사용하려 한 북한을 뒤로 한 채 과감하게 손을 털고 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이론에서는 경기자들이 상대방의 전략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전략의 짝을 찾기 때문에 ‘우월전략균형’이 이뤄진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우월전략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이 흔하지 않다. 상대방이 선택하는 전략에 따라 나의 최적 전략도 매번 달라진다. 경제학자들은 이 때문에 상대의 전략이 주어질 때 자신에게 최적의 전략을 택하면서 이뤄지는 균형 상태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른바 ‘내시균형’이다.

현재의 북핵 협상을 보면 이런 묘한 균형 상태를 원하는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카드를 내놓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거나, 진전 없는 팽팽한 균형 상태에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이 굳어진다면 북핵 협상은 북한에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우월전략을 고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북핵 협상이 완벽한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그 어떤 성과나 보상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아마도 더욱 복잡한 게임 이론과 전략적 분석 틀이 동원돼야 할지 모른다. 북핵 협상 게임은 영화 어벤져스처럼 재미로 3시간 지켜보고 손을 툴툴 털고 일어설 수 있는 픽션의 세계가 아니다. 더구나 이 게임은 경기자도, 관람객도 아닌 모호한 제3자, 즉 중간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사가 달린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북핵 협상은 우리에게 ‘가망이 없는’ 엔드 게임의 협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희망 게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홍병문 논설위원 hbm@sedaily.com

홍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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