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여권 전쟁’이 한층 뜨겁게 불붙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친(親) 러시아 행보를 보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이 점령한 동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자국 시민권 취득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해 주기로 하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 속성 발급 여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맞대응하고 나섰다.
8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돈바스 지역 담당 장관 바딤 체르니쉬는 이날 내각 회의 뒤 기자들에게 “친러 반군이 통제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 거주 주민들에게 발급된 러시아 여권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체르니쉬 장관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외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우리 외무부를 통해 설득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은퇴자 문제 담당 장관 이리나 프리스는 이날 러시아 여권을 발급받은 돈바스 지역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연금이나 복지지원금 등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도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 대한 여권 발급을 계속할 것이라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돈바스’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거주 주민들이 3개월 안에 신속하게 러시아 여권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바 있다.
돈바스 지역은 2014년 이후 친 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땅으로 최대 공업 지역이자 자원이 풍부한 알짜 지역이다. 러시아는 해당 지역을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으로 부르고 있다. 새 행정명령에 따르면 이 곳 돈바스 주민이 러시아 여권을 받는데 걸리는 시간을 앞으로 3개월로 단축된다. 이곳 주민이 러시아 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더 빠르게 주어지는 셈이다. 러시아 측은 지극히 “인도주의적 목적의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시민권 발급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해 이 지역에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한 이들이 빠르게 증가하면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 삼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분할병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앞선 2014년 찬반투표를 실시해 주민 96.7%가 러시아 귀속을 지지했다는 점을 근거로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것처럼 이곳 동부 지역에 대해서도 러시아가 비슷한 접근법으로 병합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