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료사회 어떻길래=김 실장과 이 원내대표의 ‘뒷담화’에는 고질적인 관료주의가 뿌리 깊게 배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당과 청와대가 얘기를 하지 않으면 관료들이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며 “요리조리 눈알만 굴리며 바짝 엎드려 있다. 그야말로 복지안동(伏地眼動)”이라고 비판했다.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유망한 사업 아이디어는 일단 허가를 해주고 사후 규제가 필요한지 판단하겠다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 초기부터 삐걱대고 있다. 실증특례 등의 과정을 거쳤지만 실무 단계에서 수년이 지나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막혀 규제 혁신이 추진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생큐’”라며 “책임질 만한 일은 자신에게 아예 안 떨어지는 게 좋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는 한 벤처기업 대표는 “당초 사업 범위에 제한이 없었는데 샌드박스 적용 대상이 되고 나니 범위와 사업 확장에 오히려 한도가 씌워졌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최근 방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분석실장은 정부가 주최한 한 콘퍼런스에서 “한국 관료주의의 비효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민원발생 우려에 소극행정=‘버스 대란’ 책임론에 휩싸인 국토부에서도 지난 4월 단독주택 가격 공시와 관련해 잡음이 나왔다. 정부가 산정하는 표준 단독주택과 지방자치단체의 몫인 개별 단독주택 간 공시가격 상승률 격차가 서울 일부 지역에서 7%포인트까지 발생하자 국토부는 검증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국토부가 상승률 시정을 요구한 8개 구 가운데 7개 구에서 정부 요청대로 공시가격을 조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관료들이 민원 발생 등을 이유로 소극적으로 움직이다 장관의 지적을 받고 부랴부랴 대처해 올해 주택 공시와 관련해 파장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이번 정부 들어 부로 승격된 중소벤처기업부도 안 움직이기는 마찬가지다. 홍종학 전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주요 의사 결정이나 업무 추진이 동력을 잃었다.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기부가 온·오프라인 연계(O2O) 규제 개선같이 시급한 문제에서 이해관계 단체와 다른 부처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관료 대립 트라우마?=일각에서는 여기에 단순히 공무원의 복지부동뿐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 빚어진 청와대와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 등 관료집단 간 갈등의 트라우마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 이 전 부총리는 청와대 핵심 실세인 ‘386’과 사사건건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감정싸움도 벌였다. 이 전 부총리는 386을 향해 “경제를 못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고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참여정부 DNA를 이어받은 현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관료들을 못 믿겠다”는 말이 비일비재하게 나온다. 여당의 한 핵심 인사는 “참여정부 중반부에 관료들의 벽에 막혀 각종 개혁이 좌절된 것에 대해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은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외 경제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규제 혁신 등을 관료 사회가 미적대는 것에 대해 청와대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의 “집권 4주년 같다”는 발언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세종=한재영기자 윤홍우·강동효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