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이스라엘 건국 71주년

1948년 유대국가 성립...평화는?




1948년 5월14일 오후10시, 텔아비브 미술관. 건국위원회와 시온주의자 등 250여명을 앞에 두고 다비드 벤구리온 위원장이 ‘이스라엘 국가 성립’을 선포했다. 로마에 패망하고 방랑에 나선 서기 73년 이후 1,875년 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가 성립된 것이다. 벤구리온은 유대인 토지 소유를 제한했던 영국 식민당국의 법부터 풀었다. 미국이 가장 먼저 승인한다는 희소식이 전해졌지만 유대인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아랍연맹의 군대가 사방에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국가들은 내심 이스라엘 건국을 반겼다. 전쟁의 명분이 생겨 팔레스타인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전력 차가 그만큼 컸다. 아랍연합군은 공군과 해군, 전차와 포병을 갖췄지만 정규군 조직도 편성 안 된 이스라엘의 개전 초 무장은 소총과 기관총·박격포가 대부분이었다. 절대적인 열세에도 이스라엘은 결국 승리를 따냈다. 비결은 자금력. 개전 이전부터 건국위원회는 세계 각지의 유대인 부호들에게 돈을 거둬 무기를 사모았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것도 결국은 돈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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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직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옛 독일공군 전투기를 사들이고 미국의 B-17 중폭격기도 몰래 빼냈다. 무기와 탄약을 전량 수입하는 아랍제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영국군 기관단총과 박격포, 탄약과 수류탄을 자체 생산해 시간이 흐를수록 전력이 오히려 세졌다. 이스라엘은 아랍인 추방을 위해서라면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유엔이 중재인으로 보낸 스웨덴 적십자사 총재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은 수많은 유대인을 나치의 학살에서 구해냈던 인물인데도 유대 과격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아랍연합군 간 이해가 엇갈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도 패인. 인구가 40배 많았던 아랍의 병력은 언제나 이스라엘보다 적었다. 유대 국가 출범 71주년. 이스라엘은 매번 이겼다. 영원히 그럴 수 있을까. 백전백승이 가능한 군대는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진다면 참혹한 결과가 펼쳐질 수도 있다. 추방당한 팔레스타인의 원한을 풀어주는 게 평화와 지속적 번영의 첫걸음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지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스라엘 건국 당시 쫓겨난 예루살렘의 옛집을 오랜만에 찾아보니 상호 이해와 공존을 강조했던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차지해 살고 있었단다. 묻고 싶다. 공존의 예외가 있는가. 그나마 세계적 저명인사에게 저택을 내준 게 이스라엘답다. 같은 해에 건국한 한국이라면 친일파의 몫이었을텐데….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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