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 시인의 언덕·한옥카페…어둠이 낭만을 깨우다

■ 서울 부암동 밤거리

도심 속 '오래된 동네' 정취 살아있어

어스름 내리자 작은 불빛마저 돋보여

'윤동주문학관''자하문' 또 다른 주인공

부암동의 밤을 밝히고 있는 작은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부암동의 밤을 밝히고 있는 작은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청와대 뒤편 종로구 부암동은 전형적인 서울의 중산층이 사는 단독주택지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세 개 있는데, 그것은 서울에서 집값을 결정하는 3대 요소인 지하철·대형마트·학원이다. 하지만 부암동은 다른 동네에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마트가 없는 대신 식료품을 싣고 다니며 스피커로 호객을 하는 봉고 트럭이 있고, 겨우 사람 몇 명이 들어앉으면 꽉 차버리는 작은 식당과 찻집이 있으며, 하우스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도 있다.


그 세 가지가 있으니 낭만과 운치가 있음은 당연하다. 기자는 경기도 일산에 살던 시절 직장이 있는 경복궁 동십자각까지 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통일로를 거쳐 오는 길 대신 고양시 창릉동과 서오릉 앞을 거쳐 구기터널을 빠져나와 부암동의 자하문(紫霞門)을 지나 청와대 앞으로 해서 직장에 출근했다. 그 코스를 택한 것은 순전히 부암동을 지나치기 위해서였다. 자하문을 넘어 문안으로 들어와 청와대로 향하는 한양도성 백악(白岳) 구간 앞의 도로는 ‘러시아워’에도 차 구경을 하기 힘든 나 혼자만의 한적한 길이었다.

날이 더워지니 밤이 좋아졌다. 그래서 부암동의 밤을 보러 갔다. 무거운 알루미늄 삼각대와 카메라, 여분의 렌즈를 하나 더 들고 시인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전망대에 자리를 깔고 앉아 놀고 있었다.

누가 오래된 동네 아니랄까 봐 아이들은 수건돌리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또래들의 유희인 스마트폰 게임 대신 열댓 명이 둘러앉아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수건을 돌렸다. 고개 위에 내려앉은 어둠에 부끄럼을 면했는지 노랫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아이를 업은 젊은 엄마는 조금 전 지나쳐간 청춘이 아쉬웠는지 고등학생들의 놀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감수성이 무뎌진 기자는 카메라와 삼각대가 무거울 뿐이었다.

부암동 ‘윤동주문학관’에서 바라본 남산타워.부암동 ‘윤동주문학관’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시인인 윤동주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윤동주 문학관’.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시인인 윤동주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문학관’이 있는 시인의 언덕을 지나쳐 청운동 문학도서관 앞에서 남산타워를 향해 카메라를 조준해 셔터를 몇 번 누른 후 방향을 틀어 자하문으로 향했다. 현판에는 창의문(彰義門)이라고 쓰여 있지만 기자는 ‘보랏빛 안개’의 문이라는 의미의 자하문이라는 별칭이 더 좋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 때문이다. 인조반정 때 광해군을 노린 반란군이 통과한 이 문은 사소문(四小門) 중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쿠데타의 성공으로 역적에서 공신으로 변모한 이들의 명단이 문루에 걸려 있는 자하문 아래를 지나 기자는 문밖으로 나왔다. 문 오른쪽에는 한옥으로 만든 찻집의 통유리 안으로 휘황한 불빛이 어둠을 밝혔고 실내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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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은 사소문 중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부암동 주민들은 창의문이라는 이름보다 ‘자하문’이라는 이름을 즐겨 부른다.‘창의문’은 사소문 중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부암동 주민들은 창의문이라는 이름보다 ‘자하문’이라는 이름을 즐겨 부른다.


찻집을 등지고 도로 쪽을 바라보니 버스와 승용차들이 드문드문 오갔다. 한옥 찻집 아래에는 대통령이 단골이라는 원두 커피집이 사람들로 붐볐다. 사위를 덮은 어둠은 이 조용한 동네의 작은 불빛마저도 돋보이게 했다.

길 건너편 자전거포도 어둠 속에 덩달아 빛났는데, 자전거포 2층에는 통유리를 벽으로 삼은 점포가 있었다. 점포는 환하게 밝힌 불빛 덕에 안이 들여다보였다. 실내에는 그랜드피아노 한 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젊은 여자 혼자서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기자는 도대체 무얼 하는 집인지 궁금증을 참지 못해 길을 건넜다.

건널목 바로 앞에 문을 연 채 영업 중인 작은 카페 안에는 주인인 듯한 대머리 외국인 남자가 바(bar)를 사이에 두고 앉은 술꾼들과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건망증이 떨쳐내고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어보니 메뉴판도 없고 ‘드립 머신’도 없는 휑한 공간에 그랜드피아노 한 대만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술을 파는 집 같지도 않았다.

아직도 청소 중인 처자에게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집이냐”고 물었더니 “임대용 콘서트홀”이라고 했다. 반짝이는 그랜드피아노 한 대에 스툴 30개가 전부인 음악회 장소는 소박했지만 아늑했다. 나는 콘서트홀이 흥미로웠지만 처자는 내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듯 “그 카메라 비싸 보인다”며 목에 걸린 무거운 장비를 바라보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음악을 연주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를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어스름에 도착한 부암동에는 어둠이 내렸고, 시내 마천루들의 불빛은 더욱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글·사진(부암동)=우현석객원기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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