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민주와 애국]日 군국주의는 어떻게 세력을 키웠나

■오구마 에이지 지음, 돌베개 펴냄

1946년 '평화헌법' 공표 불구

한국전쟁 핑계로 자위대 결성

美와 新안보조약 체결 등으로

우익 전체주의 망령 되살아나

'우파 정치인' 외조부로 둔 아베

'강한 일본' 개헌 야욕 드러내




지난 1일 일본 도쿄의 지요다구에 있는 왕궁에서 천황 즉위식이 열렸다. 30년 동안 재위한 아키히토 일왕의 뒤를 이어 아들인 나루히토가 새로운 천황으로 즉위했다. 일본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즉위식에서 “‘아름다운 평화’를 뜻하는 새 연호처럼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자랑스러운 일본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아베 총리는 이처럼 겉으로는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전쟁과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헌법 9조(평화헌법)를 개정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기하는 개헌을 통해 ‘더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평화의 시대’에 군사대국의 꿈을 키우며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총리의 이런 모순된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베 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 참석해 대원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아베 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 참석해 대원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가 쓴 ‘민주와 애국’은 우익 전체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현대 일본의 정신적·제도적 기원을 파헤친다. 게이오기주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일본 양심의 탄생’ ‘사회를 바꾸려면’ 등의 책을 썼다.

‘민주와 애국’은 오늘날 되살아나고 있는 듯 보이는 군국주의의 망령이 실제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지배해 오고 있는 이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1946년 공표된 일본의 ‘평화헌법’이 무색해진 결정적인 사건으로 ‘자위대 결성’과 ‘신(新) 안보조약 체결’을 지목한다.


종전 후부터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되기 전까지 일본을 점령한 미 군정은 일본의 헌법을 주도해 만들면서 전쟁은 물론 군대와 전력 보유조차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이런 태도는 급변했다. 소련·중국을 아우르는 국제 공산주의 연대에 맞설 수 있는 ‘반공 동맹국’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국이 일본을 향해 재무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동조한 일본 우익은 기다렸다는 듯 1950년 8월 ‘경찰예비대’를 설립했다. 4년이 흐른 뒤 경찰예비대는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자위대’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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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6일 미군 폭격기로부터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로 변한 일본 히로시마.1945년 8월6일 미군 폭격기로부터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로 변한 일본 히로시마.


다시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60년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신 안보조약이다. 당시 일본 수상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는 1951년 미일 양국이 체결한 구(舊) 안보조약에 ‘미국이 일본을 방위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그는 수많은 지식인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경우 미일 양국에 상호 방위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신 안보조약을 맺었다. ‘전쟁을 포기한다’는 평화헌법이 허울만 그럴듯한 누더기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이 조약에 대해 ‘전후 15년을 거쳐 간신히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며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려 한 시기’에 ‘악(惡)을 되살아나게 한 폭거’라고 꼬집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시 전 총리가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라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외교 문서를 통해 기시 전 총리가 신 안보조약 체결 후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정치적 유전자(DNA)’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도자인 셈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단순 나열하는 대신 정치인·학자·관료·예술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언술을 통해 일본이 거쳐 온 과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 발발 후 제기된 미국의 재무장 요구와 관련해 당시 사회당 의원이었던 야마시타 기신이 “국민이 재무장을 반대하는 것은 일본의 군비(軍備)를 빼앗아 놓고 또 자기들 형편에 따라 군비를 갖추라고 하는 미국이 일본인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간파했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문예평론가인 다케우치 요시미는 신 안보조약 체결 직후 “파시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무려 1,143쪽에 달하는 이 대작은 이처럼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료들을 방대하게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애국’의 이름으로 전쟁의 망령을 다시 소환한 일본 군국주의의 기원을 통렬하게 기록한다. 6만5,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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