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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잘썩고 질긴 '바이오플라스틱'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장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장



시장에 갔던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가 되면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몸은 책상에 매인 신세지만 눈으로는 책과 현관을 번갈아 체크했다. 현관 벨이 울리면 부리나케 달려나간 것은 항상 나였다. 인간탄환이 따로 없었다. 목표는 어머니의 양손 가득 들린 비닐봉지였다. 까만 비닐봉지는 산타할아버지의 빨간 보따리 이상이었다. 낑낑대면서도 기어이 고사리손으로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식탁으로 옮겼다. 까만 주님을 영접하려면 이 정도 수고는 수백번이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까만 주님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플라스틱이 썩지 않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잘게 쪼개져 바다생물을 위협한다. 생태계 최상위자인 인간도 부메랑으로 돌아온 플라스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각국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에 나섰고, 우리나라도 지난 4월부터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다.


이와 함께 썩는 플라스틱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안은 바이오플라스틱이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옥수수와 목재·사탕수수 등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만든 고분자로 분해 여부에 따라 크게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과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나뉜다. 전자는 친환경물질을 이용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만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후자는 땅속에서 미생물들에 의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바이오매스 원료로 분해 쉬운데다

나일론 맞먹는 인장강도 구현 성공

생분해성 비닐 3년내 상용화 기대


그러면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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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분해성 플라스틱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인장강도(튼튼한 정도)’다. 일상생활에서 비닐봉지를 쓰려면 쉽게 찢어지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무거운 물건을 담으면 찢어질 위험이 높다. 일반 비닐봉지 인장강도는 40MPa(메가파스칼) 이상인 데 반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인장강도는 35MPa 이하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 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렸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생분해성 플라스틱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잘 썩으면서도 안 찢어지는 비닐봉지 개발에 성공했다. 비밀은 목재펄프나 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나노섬유 보강재다. 목재펄프와 게 껍데기에서 각각 키토산과 셀룰로스를 추출해 화학처리한 후 고압 조건에서 박리했다. 다음에는 이 과정에서 얻은 나노섬유수용액을 첨가해 기계적 강도를 높였다. 일반 플라스틱은 물론이고 질긴 플라스틱의 대명사인 나일론의 75MPa과 맞먹는 인장강도다.

지난달에는 울산에서 기술설명회를 열었다. 열기가 뜨거워 모두 20여개 기업 및 기관이 기술설명회에 참석했다. 보통 서울 코엑스에서 4~5개 기술을 한데 모아 여는 기술설명회에 12~15개사가 참여한다. 반짝스타로 떠올랐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기술들이 많다. 연구실에서 싹튼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기술이 우수하더라도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하고 가격경쟁력도 갖춰야 한다. 현재로서는 6개월이면 썩고 인장강도가 우수한 이 ‘친환경 비닐봉투’가 2~3년 내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생분해성 비닐봉지가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이 생분해성 비닐봉지만큼은 상용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이슈가 심각한 상황에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어머니 양손에 가득 들린 생분해성 플라스틱 비닐봉지에 얽힌 추억이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이다.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장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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