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軍 현대화' 필리핀 최고시장...방산 수출 "남남서로 진로 돌려라"

[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이야기] < 90 > 동남아서 활로 찾는 방위산업체

동남아국가, 中위협에 군사력 증강

'내수부진' 국내업체 주력시장 부상

소총·차량부터 함정·전투기까지

필리핀, 한국산으로 전력 재구성

수출확대 위해 성능 개량도 절실

지난 23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열린 필리핀 해군 호위함 ‘호세 리잘’함 진수식. 해성 국산 함대함 미사일과 청상어 어뢰, 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호세 리잘급 두 척은 필리핀 해군의 최고 전력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지난 23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열린 필리핀 해군 호위함 ‘호세 리잘’함 진수식. 해성 국산 함대함 미사일과 청상어 어뢰, 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호세 리잘급 두 척은 필리핀 해군의 최고 전력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방위산업체들이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군 현대화 계획을 추진 중인 필리핀이 주목할 만한 시장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으로 동남아국가들의 국방력 확충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국내 방산업체들의 진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무기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고 후속 군수지원도 호평을 받고 있어 수출 전망이 밝은 편이다. 다만 고등훈련기 등 일부 방산제품의 수출을 위해 성능개량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필리핀=교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은 필리핀. 국내 반군 진압과 점증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5년 단위로 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추진해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000달러 수준이지만 해마다 6~7%에 이르는 고성장에 힘입어 자신 있게 현대화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신장비 도입과 국내 방산산업 육성에 팔을 걷고 나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방한기간 중에도 일정을 변경해가며 한국산 무기들을 직접 확인할 정도로 관심이 크다.


현대중공업이 23일 필리핀 해군의 신형 호위함인 ‘호세리잘’ 진수식을 진행한 것을 비롯해 상륙용 장갑차와 소총 등 총기류, 군용차량,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전투기, 방탄 헬멧 및 방탄복 등 방산 전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우리 국방당국은 필리핀에 대한 신형장비 수출과 함께 구형무기 공여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파견에 대한 보은의 일환이지만 신형장비 수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방부는 올해 하반기 중 포항급 초계함인 충주함을 필리핀에 넘겨줄 계획이다.

미국 해안경비대가 운용하다 필리핀에 양도한 해밀턴급 호위함. 배수량에 비해 무장이 빈약해 전투정보처리 시스템과 함대함 미사일 장착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방산업체들도 이에 참여해 결과가 주목된다./사진= 위키피디어미국 해안경비대가 운용하다 필리핀에 양도한 해밀턴급 호위함. 배수량에 비해 무장이 빈약해 전투정보처리 시스템과 함대함 미사일 장착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방산업체들도 이에 참여해 결과가 주목된다./사진= 위키피디어


◇한국산 함정, 필리핀 해군 중추 맡아=필리핀 해군은 소형함정 위주의 연한해군이지만 노후화에 따른 함정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100톤급 이하 초계정 27척에 한국이 제공한 토마스바틸로급(참수리급) 8척을 포함한 13척이 연안전력의 핵심이다. 남중국해 같은 대양에서 작전이 가능한 중대형전투함은 적고 노후했으며 무장도 빈약하다. 가장 큰 함정은 미국이 2011년부터 공여한 해밀턴급 호위함 3척. 배수량 3,250톤에 길이 115.2m 크기지만 미 해군이 아니라 해안경비대가 사용하던 함정이라 무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76㎜ 함포에 25㎜ 이하 기관포가 전부다. 두 번째로 큰 리잘급(1,250톤) 연안초계함 2척은 미 해군이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함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투함으로 손꼽힌다. 영국이 홍콩 반환과 함께 제공한 712톤급 초계함 3척도 함포와 기관포뿐이다. 대함미사일이나 어뢰를 운용하는 함정이 없다.

필리핀은 한국에서 구 충주함(포항급)을 인수해 내년부터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1,200톤급인 충주함은 해밀턴급보다 작지만 화력은 훨씬 강하다. 한국 해군 특유의 고슴도치식 무장을 유지한 채 인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76㎜ 함포와 40㎜ 쌍열기관포(노봉) 각각 2문, 어뢰발사관도 갖춘 충주함은 실전 배치와 동시에 가장 강력한 펀치를 가진 필리핀 해군함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속도 역시 시속 32노트로 필리핀의 주요 전투함 가운데 가장 빠르다.


필리핀 해군은 인천급 호위함을 기반으로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호세리잘급(2.600톤) 2척을 오는 2020년과 2021년 인도하면 대함미사일(한국산 해성)과 어뢰(청상어)까지 갖추게 된다. 호세리잘급 함포는 필리핀의 선택에 따라 한국에서 면허 생산한 76㎜ 함포가 아니라 분당 120발의 발사속도로 대공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이탈리아제 슈퍼 래피드건이 탑재될 예정이다. 성능이 제한적이고 배치 수량도 적지만 대공미사일 시스템이 달렸다. 호세리잘함은 기득권을 버리고 스페인으로부터 비폭력 독립운동을 벌이다 사망한 호세 리잘의 이름에서 따왔다. 국부 격인 리잘은 필리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대우해양조선이 건조한 호위함을 인수한 태국 해군도 함명을 생전에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푸미폰아둔야뎃’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인천급 호위함 기반으로 건조한 수출형 호위함을 수입한 필리핀과 태국이 이들 함정을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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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통령 전용기 호위 비행 중인 필리핀 공군 소속의 FA-50PH. 필리핀 공군의 최신예 하이급 전투기로 활용하기 위해 FA-50PH 12대를 수입한 필리핀은 추가 주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 위키피디어필리핀 대통령 전용기 호위 비행 중인 필리핀 공군 소속의 FA-50PH. 필리핀 공군의 최신예 하이급 전투기로 활용하기 위해 FA-50PH 12대를 수입한 필리핀은 추가 주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 위키피디어


◇전투기 추가 수출, 지상무기 신규 수출도 가능=필리핀 공군도 한국산 FA-50을 중심으로 전력을 늘려가고 있다. 고등훈련기와 경공격기·전투기 등 다용도인 FA-50의 성능에 만족한 필리핀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이 여러 차례 추가 도입을 언급한 적이 있다. 수량은 최소한 12대이며 가격 문제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1990년대 중반 K-3 경기관총을 수입해 쓰고 있는 필리핀 육군은 차기 소총 개발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빌려 필리핀 국내에 자체생산 시설을 갖추겠다는 목표 아래 S&T모티브를 최근 방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필리핀군은 미국제 M-16A1을 기반으로 국내에서 부분 개조한 소총을 사용하나 노후화로 10만여정의 신규 보급을 희망하고 있다.

차량도 수출 대상이다. 필리핀 육군은 기아에서 생산한 소형전술차량 3대를 필리핀 국내의 다양한 환경에서 시험하고 있다. 필리핀 해병대용 상륙용장갑차(KAAV-7)도 이미 4대가 인도됐으며 하반기에 나머지 8대가 선적될 예정이다. 수리온헬기 역시 신뢰를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에 따라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비싼 미국제 무기 대신 한국에서 무기를 조달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 한국의 필리핀 무기 수출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있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역내 역학관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제 무기의 단가가 비싼데다 미국 역시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의식해 동남아국가들의 전력 강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병대가 운용중인 KAAV-7 상륙돌격장갑차. 필리핀 해병대에 올해안에 12대가 수출될 예정이다. 필리핀은 상륙돌격장갑차 수입 뿐 아니라 한국해병대가 교류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한국해병대가 운용중인 KAAV-7 상륙돌격장갑차. 필리핀 해병대에 올해안에 12대가 수출될 예정이다. 필리핀은 상륙돌격장갑차 수입 뿐 아니라 한국해병대가 교류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수출확대 위해 개량 나서야=국내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동남아 시장의 수요가 단발로 끝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차와 자주포·전투기 등 군의 기본수요를 충족해 더 이상의 대량주문을 받기 어려운 방산업체 처지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하나 있다. 수출증대와 국내수요 창출을 위한 성능 개량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소총에서 전투기까지 그동안 국내 방산업체는 한번 생산하고 군에 납품한 뒤에는 창정비 주기가 돌아오기 전까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이제 끊임없는 품질 보증 노력과 개량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필리핀은 차기 소총 개발에서도 개조 역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개량이 필요한 방산제품은 가장 고가이며 부가가치도 큰 T-50 초음속기. 미 공군 차기 훈련기 시장 도전에 실패한 후 성능 개량 얘기가 쏙 들어갔다. 반면 T-50과 경쟁했던 기종들은 개량형을 선보이고 시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사는 훈련기 M-346를 공격기형으로 개량한 M-346FA를 새로 선보였다. 각국에서 생산한 다양한 미사일과 유도폭탄을 장착할 수 있어 미국제 무기 수입이 어려운 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차기 경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T-50의 전반적인 성능에 호감을 보이면서도 무장 확장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높다는 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신규 개척과 기존 T-50 수입국들에 대한 후속 군수지원 차원에서도 개량은 필수적이다. 당장 한국에서 면허 생산한 이스라엘제 기계식 레이더를 장착한 기체에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레이저 유도무기를 탑재하는 개량이 요구된다. 에콰도르와 페루·콜롬비아·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물론 이미 T-50을 운용 중인 국가들도 개량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에 수입한 기체의 개량은 물론 더 많이 수입할 의향까지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기의 후속 군수지원은 30년간 도입가격의 3배에 이르는 게 보통이다. 개량 키트를 팔면 마진은 더욱 올라간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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