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GM도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상당하다”며 “암참이 한미 경제관계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기여해온 만큼 ‘한국에 무역법 232조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계속 전달해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검토해왔다. 실제 이 조항이 적용되면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은 최고 25%의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이달 17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가 6개월 유예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한국에 대한 면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관세 부과가 단지 6개월 연기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백악관은 일본 및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에 따라 추가 조치가 필요한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대담=김현수 산업부장 hskim@sedaily.com
김 회장은 두 가지 논리를 들어 미국 정책 입안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대한국 상품무역수지 적자가 지난 2016년 277억달러에서 2017년 229억달러, 지난해 179억달러까지 감소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이는 서비스수지 흑자까지 포함하면 상쇄될 정도의 수치”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수지는 121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서비스 수출액은 2011년 대비 81% 증가했다. 여행 부문 교역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미국 여행 서비스 수출 규모는 2011년보다 84% 늘었다.
다음으로는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긍정적 효과다. 김 회장은 “기존 한미 FTA도 ‘황금률’이라 불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미 FTA 2.0’은 그보다도 진일보한 버전”이라면서 “개정된 한미 FTA가 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선순환을 이뤄낼 것이라는 점은 한국이 무역법 232조 적용의 예외가 돼야 한다는 근거”라고 말했다. 암참은 최근 한미 간 경제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 FTA 이행 스코어카드’를 청와대와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점을 한미 경제관계의 핵심요소로 꼽았다. 경제인들이 ‘민간 외교관’으로 한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달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1억달러를 투자하는 데 감사를 표하며 “한국 같은 훌륭한 파트너들은 미국 경제가 어느 때보다 튼튼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미국 경제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에 부합한다”며 “방미 당시 조지아주 연방 상원 의원과도 만났는데 현대·기아자동차의 현지투자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한국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현대·기아차가 미국프로농구(NBA)를 후원한 데 이어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을 후원하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주류로 진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4년 연속 미국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모두 후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타이어도 다양한 현지 스포츠에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는 나보다도 미국 프로 스포츠를 잘 아시는 것 같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232조를 한국과의 군비 협상 등에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232조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미 관계에 있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자이기는 하지만 조언을 해줄 강력한 자문단과 보좌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6개월 뒤에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올 4·4분기 설립을 앞둔 ‘암참 한국 중소기업센터’가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암참은 지난달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청과 관련 협약을 체결하고 한국에 진출하는 미국 중소기업에 암참 첫 회원비 50% 할인, 사무실 임대, 항공권, 법률·노무 서비스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가 해외 주재 상공회의소와 이러한 협약을 체결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한국이 미국의 6대 교역국임에도 3,000만개 중소기업 중 2만개 기업만이 한국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증거”라며 “더 많은 미국 기업의 진출은 한국에 대한 더 많은 투자와 세금, 일자리 등 경제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 기업의 활발한 진출을 위해서는 한국 경제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김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규제와 감세정책을 한국 정부가 벤치마킹할 대상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은 모든 인종에 걸친 역대 최저 실업률과 더 많은 해외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면서 “반면 한국에서는 세율이 높아지고 규제는 늘어나고 있어 이러한 점이 개선돼야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암참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경영상의 불확실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회장은 “현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도입한 배경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최저임금 인상과 갑작스러운 주 52시간제 도입 등 정책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점에서 여러 회원사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야후코리아·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GM 등 한국에서 여러 글로벌 기업을 경영했던 김 회장의 경험상 이러한 변화가 경영계획 수립에 큰 난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현지 본사와 협조해나가면서 긴 사이클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기민한 정책 대응이 어렵다”며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정책 개선이 이뤄져야만 중국의 ‘웨강아오 대만구(Great Bay Area)’ 등 역내 다른 경제권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지적이다. 광둥 지역과 홍콩·마카오를 묶는 대만구는 아시아 최대의 단일 경제권이자 선전·둥관 등 중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정보기술(IT) 생태계가 위치한 지역이다. 한국과 비슷한 크기에 지역총생산(GRDP)은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1조6,550억달러)보다 약간 낮은 1조5,000억달러 수준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중국은 올해 2월 홍콩을 금융·무역·물류·항공 중심, 마카오를 관광 중심, 선전을 혁신기술 중심으로 육성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에 비견되는 경제지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이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 회장은 “대만구는 수많은 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면서 “현장에서 강연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미국 실리콘밸리나 뉴욕이 아닌 한국과 이 지역을 비교했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건의할 수 있다면 한국도 이러한 지역을 만들어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경제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긍정 전망을 제기했다.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콘퍼런스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김 회장은 “연사 대부분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지지하는 반면 관세를 매기는 데는 반대 의견을 냈다”며 “대부분 미중 무역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 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믿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다만 미중 무역분쟁을 양국 간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계기로 보는 강경론도 일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부 미국 연사는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해 양국 무역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리=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