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反) 화웨이’ 전선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NH농협은행이 화훼이 통신장비 사용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은행 지점 1,100여곳과 농축협 영업점 4,700여곳을 연결하는 전용회선을 새로 구축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KT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본계약 체결을 남겨 놓고 아직 이렇다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9월까지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KT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사라져 1,200억원을 들여 KT와 농협은행의 금융망을 고도화하려던 사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 뻗어 있는 넓은 지점망을 다루는 데는 KT가 최적의 파트너지만 KT가 사업을 함께할 장비사업자로 화웨이를 택하면서 농협은행의 고민은 시작됐다. 금융망 고도화 1차 사업자로 KT를 선정했지만 KT가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면서 본계약 체결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농협은행은 본계약 체결이 지체되는 데 대한 이유를 KT 측에 직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기존에 전용회선을 설치할 때 알카텔루슨트(현 노키아)의 장비를 사용했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불가피하게 화웨이와 손을 잡았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화웨이 통신장비의 경우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며 화웨이와 제휴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화웨이 통신장비에는 전산망 정보를 몰래 빼돌리는 장치인 ‘백도어’가 설치됐다는 의혹이 미국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농협은행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미국은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후 한국에도 거래 제한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화웨이 통신장비가 농협은행 자체 전산망에 쓰일 경우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우려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은 ‘화웨이 장비’ 사용하겠다는 KT와 본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다. 3개월 정도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KT와 본계약 체결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KT가 화웨이 대신 다른 외국 업체의 통신장비를 쓰겠다고 하면 본계약 체결이 수월하겠지만, KT가 화웨이 장비 사용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농협은행이 본계약을 끝까지 미룰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KT와 화웨이간 관계를 고려해 농협은행이 최대한 KT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당장 9월에는 본계약을 체결해야 KT가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농협은행 입장에서는 KT가 화웨이 장비를 직간접적으로 쓰지 못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했다는 모양새로 비춰지면 중국의 보복으로 중국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고, 그렇다고 묵인하면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특히 농협은행이 화웨이 장비 사용을 주문한 적도 없는데 KT가 비용 절감을 위해 화웨이와 손을 잡은 것을 두고 책임 불똥이 튀는 것도 난감한 상황이다.
농협은행이 본계약 압박으로 KT가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하게 하면 국내 금융사 중 가장 먼저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다른 은행이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전례가 없는데 농협은행이 굳이 (무리하게 화웨이 장비를 쓰는) 위험을 질 이유가 있겠느냐”고 밝혀 KT 측을 압박해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않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농협은행은 KT와의 금융망 고도화 계약을 철회할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노키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의 정보기술(IT) 담당 임원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통신망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화웨이 장비를 쓰는 방안을 검토한 적은 있다”며 “하지만 개인정보에 매우 민감한 금융권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으로 정보유출 논란에 휩싸이면 고객들도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민감했는데 (농협은행이 반 화웨이 전선에 나서면서) 국내 금융권에는 화웨이 장비를 쓰는 사례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