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은 그동안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받지도 못하고 자생적으로 성장했고 오히려 산업 규모가 커진 후에는 정부의 규제만 강화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질병이라고 한다면 이 산업이 얼마나 위축될지 알 수 없습니다”
국내 대형 게임업체의 한 관계자는 26일 “게임이 국내 산업의 주력으로 떠오른 만큼 최소한 세계보건기구( WHO) 결정의 국내 도입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게임업계는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이번 결정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게임학회 등 국내 85개 단체로 구성된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공대위는 또 “질병코드 지정은 UN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게임업체들도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는 자사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게임은 우리의 친구이며 건전한 놀이문화”라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카드뉴스 형식의 게시글을 올렸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중독을 질병이라고 한다면 회사에서 게임중독으로 병가를 내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며 “게임중독이 질병코드로 등재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덧붙였다. 게임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 같은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공대위는 오는 29일 국회에서 공대위 출범식 및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전략과 활동 계획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예정대로라면 WHO의 이번 결정은 통계청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반영되는 것으로 2025년 국내에도 적용된다.
아울러 게임업계는 게임 수출 타격도 우려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의 해외 매출은 40억달러(4조7,800억원) 규모로 전체 콘텐츠 수출의 60%를 견인했다. 영화의 100배, 음악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 게임산업의 연간 매출은 13조원 정도로 e스포츠와 IP(지식재산권), 캐릭터 사업 등을 제외하면 70%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WHO 회원국이194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2022년부터 대부분의 회원국이 이를 도입하면 관련 규제 법안이 잇따를 수 밖에 없고 수출 차질은 불가피하다. 실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해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 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가 국내 게임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협력단은 질병 분류 실행 이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 3년간 국내 게임산업은 최소 5조1,00억원에서 최대 11조3,5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2011년 도입된 셧다운제(자정부터 6시까지 청소년의 PC게임 및 유로 콘솔게임 이용 금지)의 경제적 영향보다 약 4배 이상의 큰 규모다.
협력단은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돼 게임 수요가 감소할 것이고 이 때문에 게임 업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증가할 것”이라며 “정부의 게임 관련 규제도 강화되어 전반적인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