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둥성 선전의 전자상가 집결지인 화창베이에서 화웨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에 맞출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베이징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 스마트폰 가격이 한국산의 절반도 안 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만들 수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원인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다. 그런데 왜 부당행위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가. 기자가 되묻자 그 관계자는 멋쩍게 웃으며 “지금…미국이 하고 있지 않느냐”고 답했다.
# 최근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이동통신 5세대(5G) 상용서비스를 오는 10월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투자부족으로 내년에야 시범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미중 무역전쟁의 과정에서 화웨이가 큰 타격을 입자 당국은 일정을 대폭 앞당겼다. 시설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ZTE 등이 맡을 예정이다. 미국의 거래제한으로 시장을 잃은 화웨이를 지원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에 전 세계가 시끄럽다. 논란의 핵심은 화웨이가 산업보조금 등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중국의 글로벌 IT 패권 장악을 위한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IT 기업들 입장에서는 불공정경쟁이 문제시되고, 화웨이가 진출한 해당 국가 입장에서는 국가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한 국가는 미국이지만 다른 나라들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한국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이어 다시 한번 중국과의 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7,212억위안(약 124조원)에 달했다. 알리바바 등 대부분의 중국 대기업들이 중국 국내를 주요 활동무대로 삼는 것과 달리 화웨이는 분명 세계적인 기업이다. 화웨이는 전 세계 170여개 국가에 진출했고 총매출의 65%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그런데도 화웨이가 세계 각국에 적대시되는 것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 점은 화웨이 사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확연한 시각차에서도 드러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3일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중국 정부·공산당과 화웨이의 연계는 네트워크를 오가는 미국의 정보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관변학자의 논평을 통해 “근거 없는 미국 정객의 선동”이라며 “미국이 휘두르는 관세 몽둥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웨이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미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화웨이가 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충성(loyalty )이 중국 지도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 회장은 1987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회사를 세웠다. 홍콩에서 수입한 통신장비 판매로 시작한 초창기 사업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 사업확장 과정에서 중국 정부라는 ‘보이는 손’이 작용한다. 중국 경제체제를 보면 대략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단계가 존재한다. 무한경쟁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 시장과 독점이 형성되는 대기업 시장이다. 수많은 기업이 생겨나고 스러져가는 가운데 눈에 띄는 기업이 있으면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정부라는 줄을 잡고 나면 사업은 탄탄대로다.
고만고만한 중소업체였던 화웨이는 1994년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의 회사 방문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그 전해에 ‘중국판 정보화 전략 프로젝트’를 마련한 뒤 정보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당연히 정보화 관계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후 화웨이는 중국군(인민해방군) 통신망을 부설하는 계약을 따냈고 베이징시 통신망 업체로 단독 지정되는 등 잇따른 특혜를 받았다. 이후 중국 IT 산업 육성의 전면에는 늘 화웨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녔다.
물론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화웨이가 직면했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당시 중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서구 IT 대기업들이다. 화웨이는 이들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는 전략을 택했다. 서구 기업들이 집중한 도시를 피해 농촌 지역의 통신망 구축에 집중한 것이다. 이를 통해 힘을 축적한 뒤에야 화웨이는 도시에서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런 회장이 경애해 마지않는 마오쩌둥의 ‘농촌으로부터의 도시 포위전략’을 응용한 셈이다.
중국 시장이 포화단계에 진입하면서 해외진출을 꾀하는 데서도 화웨이는 개발도상국부터 집중 공략했다. 여기에는 정책적으로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에 진출한 중국 정부의 지원이 적잖이 작용했다. 2000년대 들어 개도국의 통신장비 시장을 집중 공략했는데 이에 대해 미 CNN방송은 “중국개발은행이 2005~2011년 7년 동안 화웨이 사업에 400억달러(약 47조4,000억원)를 지원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집계하기도 했다. 당시 글로벌 기업들의 주요 경쟁무대였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화웨이가 다른 경쟁기업보다 20~30% 정도 저렴한 가격의 장비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낮은 인건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과 개도국에서 얻는 독점적 이익이 바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화웨이 성장의 원천은 중국 시장에서의 특혜다. 화웨이는 중국 내 3G·4G 통신망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본격 성장했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 내 기업으로 남아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하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지난해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중국 정부가 이른바 ‘중국제조 2025’를 위해 지원하는 산업보조금이다. 화웨이가 최대 수혜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화웨이가 전 세계에 부설하는 통신망이 중국 정부의 영향력 확대에 활용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제정된 중국 국가정보법 제7조는 ‘모든 조직이나 국민은 국가 정보업무에 협조해야 한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네트워크안전법 제28조는 화웨이 같은 통신장비 사업자들이 국가정보기관에 기술적인 지원과 협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외신에 따르면 관련 법규들을 분석한 미국 정부는 “현 중국 법체계 아래에서 중국 기업이 공산당 정부의 어떤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다른 국가나 기업의 정보를 빼내는 백도어를 기기에 설치했다는 의심으로 발전했다. 이는 화웨이와 거래하는 해당 기업의 경영은 물론 국가안보마저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화웨이가 그동안 자행한 기술절도 역시 중국 정부와 직접 관련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화웨이가 의심을 받는 이유는 이 회사 특유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우선 런 회장은 중국군 통신장교 출신이다. 중국 기업가로서는 흔치 않은 경력인데 더 문제는 이런 군대문화가 기업조직에도 스며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IT 기업이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과 구별된다. 또 화웨이는 특유의 ‘늑대정신’을 내세우며 폐쇄성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의 주요 기업으로는 보기 드문 비상장사이기도 하다. 런 회장은 상장을 할 경우 “극소수 주주들만 돈을 번다”고 말하지만 이는 핑계가 분명하다. 비상장사는 회사 사정을 시장에 알릴 필요가 없다. 중국 정부가 마음껏 휘두르기에 적합한 회사라는 의미다.
화웨이의 발표에 따르면 ‘100% 민간기업’인 화웨이의 런 회장 지분은 1.4%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종업원들이 갖고 있다. 하지만 런 회장이 이렇게 극소수의 지분으로 지난 30여년간 화웨이를 철권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화웨이가 최근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십자포화’를 맞자 얼마 전까지도 언론이라면 질색을 하던 런 회장은 올해 들어 일주일이 멀다 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다른 나라 국가정책에 대한 비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역시 중국 정부라는 배경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하는 언론은 선별적이다.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는 중국 매체들을 제외하면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이 1순위이고 영국 등 유럽 매체가 2순위다. 최근에는 일본 언론을 본사로 불러 인터뷰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대립으로 일본 기업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당국 언론들이 도움을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산당 일당체제라는 중국 정치와 중상주의적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화웨이 역시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 화웨이 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 또한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베이징의 한 IT 산업 관계자는 “중국의 시스템을 바꾸려는 미중 무역협상의 특성상 화웨이 사태가 무한정 시간을 끌 수도, 거꾸로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