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지역 국회의원, 시장에 이어 교육감까지 ‘참전’했다. 기업 경영과 사회 문제와는 거리가 먼 교육감이 법인분할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침묵 속에 합리적인 대화 중재와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할 지역 고위인사들이 오히려 다툼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하루 전인 30일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은 성명을 내고 “현대중공업은 46년간 울산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울산 경제의 축이며 재벌의 일방적 소유물이 아니라 울산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자산”이라고 전제한 뒤 “현대중공업의 법인분할은 과도한 부채 증가, 상시적 고용불안, 구조조정 우려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이 한국조선해양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게 되면 울산 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는다”며 “이는 결국 교육격차를 심화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격차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경제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교육감이 노조의 불법파업과 폭력에는 눈감은 채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법상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이 없는 기업 경영활동에 대한 파업은 불법이다. 더구나 법원이 주총장을 점거하거나 봉쇄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명령했음에도 노조는 이를 비웃듯 법원의 판단 직후 주총장인 한마음회관을 점거했다.
지역 정치인들도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조장’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지난 29일 “현대중공업을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서울로 본사를 옮겨가는 것은 시민의 열망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울산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삭발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송 시장이 팩트를 왜곡해 시민들의 감정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에 본사를 두기로 한 한국조선해양으로 소속이 바뀌는 인원은 현대중공업 직원 약 1만4,500명 중 500명 정도다. 나머지 1만4,000명은 울산 현대중공업 소속으로 지역에 남는다. 소속이 바뀌는 500여명 가운데 450명 정도는 이미 울산이 아니라 서울 계동 사무소 등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합리적 대화와 중재에 나서는 게 아니라 노조의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김종훈 의원(민중당)은 이날 주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지막까지 노동자들과 함께 한마음회관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현대중공업 2대 주주인 국민연금에 물적분할을 반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국민연금이 찬성 입장으로 가닥을 잡자 “참으로 분노할 일”이라며 “국민연금을 강력 규탄한다”고 했다. 김 의원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울산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갑윤·박맹우·이채익 의원도 28일 성주영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을 만나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맺은 양해각서에 따르면 기업결합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경우 계약조건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물적분할을 취소하라고 압박했다. “울산에서는 ‘협치’가 잘 이뤄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찰은 법원의 점거 금지 명령과 사측의 퇴거 요청에도 노조의 주총장 불법점거를 나흘째 방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은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한 거래 구조의 핵심이다. 조선업 불황으로 대규모 현금 동원이 어려운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정을 감안해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은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물출자 방식의 거래 구조를 짰다. 현대중공업을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분할한 뒤 산은이 한국조선해양에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현물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 지분을 대가로 받는 방식이다.
이는 ‘최악의 보릿고개’를 겨우 넘어가고 있는 한국 조선업의 상황을 타개할 묘수로 꼽혔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빅3’ 체제로 인한 불필요한 고정비 지출과 ‘제 살을 깎아 먹는’ 저가 수주 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한국조선해양을 연구개발 중심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중국과 저가 외국인 노동력을 앞세운 싱가포르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방법은 기술 차별화뿐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조선 산업의 큰 그림이 정치와 노조·지역이라는 ‘벽’ 앞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선업 관계자는 “사측이 단체협약·고용·복지 등을 분할 전과 같이 승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노조가 대화를 거부하고 불법점거로 맞서는 상황”이라며 “이를 중재해야 할 정치인들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