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 첫주 토요일 화성사업장에서 사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이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수요가 감소하며 삼성전자 반도체의 주력인 D램 가격은 4달러대가 붕괴되고 디스플레이는 중국 업체들이 북미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위기관리에 나서며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이 부회장은 1일 오후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등 전자 관계사 사장단이 참석한 회의에서 상반기 예상실적과 글로벌 경영환경에 대해 집중 점검을 했다. 애초 상반기가 마무리된 후 사장단 회의를 계획했지만 최근 화웨이 거래 금지 등 무역전쟁의 여파가 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회의를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평일을 사업장에서 일하고 주말 사장단 회의를 하자”는 의견도 이 부회장이 직접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의 핵심은 ‘기술경쟁력’과 ‘투자의 연속성’이었다. 이 부회장은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며 “삼성의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언급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 여파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초격차’ 전략에 매진하라는 의미로 분석된다. 무역전쟁 가운데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삼성전자에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삼성의 5대 매출처 중 하나인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하게 되면 삼성의 부품(메모리반도체·디스플레이) 매출에 불똥이 예상되는 반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사업 등에서는 반사이익도 점쳐진다. 하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기업별 반(反)화웨이 진영 합류 여부 등에 따라 파장의 갈래가 다양해 예측이 어렵다. 이 부회장의 말을 두고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어려울수록 기본(실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했다.
투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특히 인공지능(AI)·5세대(5G)·바이오·전장 등 미래 신수종 사업과 비메모리 분야를 콕 짚어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내놓은 (4대 신수종 사업에 대한) 3년간 180조원 투자와 4만명 채용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자”라고 말하며 투자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133조원 투자에도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회의에 참석한 김기남 부회장은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하고, 동시에 수백조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며 “사장들도 공감하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위기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메모리 반도체가 꺾이기 시작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커진 대외 불확실성은 삼성의 미래사업에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영업이익 6조2,333억원을 거둬 2016년 3·4분기(5조2,001억원) 이후 10분기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지난해 3·4분기 17조5,700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외끌이로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끌어왔던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좀처럼 하락세가 멈추지를 않는다. D램가격의 경우 지난해 9월 8.19달러까지 올랐던 가격이 지난달 3.75달러까지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이 부회장과 DS 수뇌부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 시스템반도체·AI 등에서 곧 대규모 M&A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 격변기에 무역분쟁까지 격화돼 위기감이 커지며 이 부회장의 행보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5월 5G 시장 공략을 위해 일본의 주요 통신업체를 방문했고 최근 15개월 새 총 여섯 차례나 해외 정상급 인사를 만났다. 특히 일본 방문은 대일관계 악화 속에서 이뤄져 더 주목받았다. 이 부회장이 직접 위기관리에 나선 이유를 일각에서는 그룹 전반의 전략을 담당했던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전자 계열사 간 사업조율을 맡았던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도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과정에서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경제단체의 고위 임원은 “미래 신수종 사업 추진, 핵심 사업으로서 비메모리 육성, 글로벌 경영 등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을 것”이라며 “조직의 구심점으로서 내부 긴장감을 높이려는 의도도 감지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