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한국 경찰의 기관총에 사망한 적군은 200명이 넘었다. 그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중국군을 확실하게 저지했다.” (미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장 로버트 태플릿 중령의 저서 ‘다크호스 식스’)
한국 경찰관들이 6·25전쟁 당시 ‘장진호전투’에 참전해 펼친 구체적인 활약상이 새롭게 확인됐다. 경찰청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장진호전투에 참전한 경찰관들과 그들의 자세한 전공(戰功)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장진호전투는 함경남도 장진군 저수지 장진호에서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2주간 유엔군과 중공군 간에 치러진 전투로 ‘인천상륙작전’ ‘다부동전투’와 함께 6·25전쟁 3대 전투의 하나다.
‘다크호스 식스’ 등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총 1만5,000명이 유엔군에 배속돼 활동했고 이 가운데 미군의 특별훈련을 받은 경찰관 40여명이 ‘화랑부대’라는 이름으로 장진호전투에 투입됐다. 화랑부대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에 소속돼 남하하던 중공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태플릿 중령은 저서에서 화랑부대에 대해 ‘중국군의 예봉을 꺾고 지휘본부를 방어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성공적인 방어를 가능하게 했다’고 기록했다.
장진호전투에서의 화랑부대의 눈부신 활약상은 당시 참전한 또 다른 미 해병대원의 수기에서도 드러났다. 미 해병 1사단 소속 마틴 러스는 저서 ‘브레이크아웃’에서 장진호전투에 참전한 한국 경찰에 대해 ‘그 전초에는 미 해병에 의해 훈련된 군기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 경찰 기관총부대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장진호전투는 중공군의 남진을 지연시켜 피난민 10만여명이 흥남부두를 통해 남한으로 빠져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진호전투에 한국 경찰부대가 참전해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경찰은 6·25전쟁에서 국군을 도와 낙동강 방어 등에 참전했고 서울 수복 후에는 주로 후방 공비 토벌을 했던 것으로만 알려져 왔다. 하지만 경찰은 전 인원이 6·25전쟁에 참전해 장진호전투뿐 아니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등에도 참전했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6·25전쟁 중 경찰관 1만7,378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실종됐다. 경찰 관계자는 “6·25전쟁 당시 경찰은 전 경찰관이 정규군과 다름없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다”며 “장진호 참전 경찰관들에 대한 선양과 예우를 강화하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장진호 참전 경찰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