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쓰고 다닐 용감한 자 누구인가.” “그냥 열사병에 걸리는 게 나을지도…”
지난달 24일 도쿄도가 공개한 ‘모자 우산’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더위 방지 아이템’으로 소개된 이 우산은 성인 어깨너비의 우산을 모자처럼 머리에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 굳이 손으로 우산을 들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는 게 도쿄도의 설명이다. 이 야심작은 그러나 공개와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당장 코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의 이날 기자회견에 모자 우산을 착용한 공무원이 등장하자 회견 내용을 노트북에 받아치던 기자 중 일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자 우산을 착용한 직원도 회견 내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플래시 세례를 받아야 했다. 웃음 지뢰는 뉴스로까지 이어졌다. 이 소식을 전달하던 한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는 멘트 도중 웃음을 터뜨렸고, 영상을 함께 보던 또 다른 진행자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도쿄도는 이 ‘마성의 모자 우산’을 올여름 다양한 올림픽 시범 경기 및 이벤트에 보급할 계획이다. 올림픽 자원활동가들에게도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관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편 일본은 무더위 방지를 위해 여성의 아이템으로만 여겨져 온 양산을 남성들에게도 장려하고 있다. 하라다 요시아키 환경상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열사병 대책의 하나로 남성들의 양산 쓰기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환경성에 따르면 기온 30도, 습도 50%, 일사량 1.2kW/㎡의 인공기상실에서 남성 6명을 대상으로 모자만 쓴 경우와 양산을 사용한 경우로 나눠 15분 걷기 운동을 시킨 결과 모자에 비해 양산이 땀의 양을 17% 감소시켰다. 일본은 이 같은 이유에서 몇 년 전부터 남성의 양산 쓰기를 장려하고 있지만, 참여는 미미한 편이다. ‘양산은 여성의 것’이라는 인식에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환경성은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백화점 양산·우산 매장에 양산을 통한 열사병 예방 효과를 설명하는 홍보물을 배포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16일 ‘아버지의 날’을 맞아 자녀들의 ‘양산 선물’을 적극적으로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관련 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며 고객 유치에 힘쓰는 모습이다. 단순한 도형이나 격자 무늬가 들어간 남성용 디자인을 내놓는가 하면 기능성을 중시하는 남성 고객을 겨냥해 양산·우산 겸용도 확대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크기를 조절한 남녀 공용 제품도 최근 인기라고.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의 남성 잡화 담당인 고다마씨는 “아직은 남성의 양산 쓰기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정부의 장려로 뉴스에 관련 소식이 많이 나오면서 문의하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여름용 모자를 보러 왔다가 바로 옆에 있는 양산 코너에 들러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족으로 다시 ‘그 모자 우산’ 이야기다. 코이케 지사는 회견에서 “남자들이 양산 쓰는 게 민망하면 이걸 써보면 어떠냐”고 말했다. 이 발언에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댓글로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모자 우산을 쓰고 나온) 남자 직원은 민망함을 넘어선 무아의 경지에 이른 표정이다.” “햇볕보다 더 뜨거운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추가해 남성 고객 확대를 꾀하는 양산 업계, 그리고 ‘양산이 민망하면 이 모자 우산을 쓰라’는 도쿄도. 승자는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