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이 초대형 정보기술(IT)사들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돌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5개 주요 IT사인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주가가 고꾸라졌다. 연초 민주당의 일부 대권 주자들이 ‘페이스북 해체론’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된 ‘IT 공룡 때리기’가 오는 2020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유럽연합(EU)에서 과징금 폭탄을 맞고 비틀거렸던 실리콘밸리의 초대형 IT사들은 안방에서까지 정치권과의 공방전을 치르게 됐다.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주식을 지수화한 ‘FANG+’는 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전 거래일 대비 3.54% 폭락하며 올 1월3일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다. 페이스북(-7.51%), 알파벳(-6.11%), 아마존(-4.64%)의 낙폭이 가팔랐고 넷플릭스와 애플도 각각 1.92%, 1.01% 떨어졌다.
이들 5개 종목의 주가 급락으로 하루 동안 날아간 시가총액만 1,329억달러(157조원) 규모에 달한다. 시가총액 대장주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이날 1.61% 급락해 4월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면서 조정장에 진입했다.
FAANG이 급격히 추락한 것은 지난주 말부터 미 연방정부가 공룡 IT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독점 조사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향후 몇 주간 논의를 거쳐 법무부가 애플·구글을, FTC가 아마존과 페이스북을 각각 나눠서 조사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두 규제당국이 업무를 분담한 것이 본격적인 반독점 조사가 시작된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해당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물론 IT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 전반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들 4개사에 대한 반독점 조사 소식에 넷플릭스뿐 아니라 트위터(-5.52%)도 폭락했다.
규제당국은 4대 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한 경쟁을 억제했는지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애플과 아마존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은 조사를 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특히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개인정보를 넘겨 질타를 받았던 페이스북은 다시 혹독한 조사를 치르게 됐다.
여기에 정치권도 ‘IT 기업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반독점 이슈는 눈덩이처럼 커질 분위기다.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반독점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시실린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초당파적으로 반독점 문제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을 지목하면서 “이번 조사는 ‘(이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로 무장한 민주당 대권 주자들이 쟁점화한 IT 기업 독점 문제는 나아가 2020년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은 3월 페이스북·구글·아마존을 저격하며 ‘IT 공룡’ 해체론에 물꼬를 텄고 또 다른 민주당 대선 주자인 카멀라 해리스도 페이스북이 소비자의 이익보다 이익 성장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페이스북 해체론에 동참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까지 FTC를 향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의 반독점 위반, 개인정보 우려에 대응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구글의 검색 결과가 자신에 불리하게 배열된다고 지적하며 IT 기업들이 ‘좌편향적’이라고 공격을 펴왔다. 그는 영국 국빈방문 중인 이날 트위터에서 자신과 적대적인 CNN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며 모회사인 AT&T의 불매운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IT 기업들은 연방정부와 정치권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해 대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규제당국에 시달리며 구글 등에 추격을 허용한 사례가 자신들에게도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CNN은 “페이스북과 아마존이 법무부 출신의 반독점 변호사를 고용했다”면서 실리콘밸리가 반독점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