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 엘리트 독식사회]'고결한 쇼'에 속지 마라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지음, 생각의 힘 펴냄

"신흥 엘리트의 인자한 자선활동

불공정 시스템 변화 의지 없애

기득권 유지하려는 속셈" 주장

승자 사회 힘싣는 신지식인 등

불편한 진실 날카롭게 파헤쳐




“최악의 노예 소유주는 자신의 노예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서 그 시스템으로부터 고통받는 이들과 그 시스템을 심사숙고하는 이들이 그것이 가진 끔찍함을 깨닫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했던 사람들이었고, 마찬가지로 현재 영국의 상황에서 가장 해악을 끼치는 이들은 가장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100여 년 전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당시 영국 계급사회에 대해 이같이 일갈했다. 다소 극단적인 이 발언은 신간 ‘엘리트 독식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NYT) 전 칼럼니스트이자 타임 논설 주간인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다. 그는 오늘날 일부 엘리트들이 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약탈적인 엘리트’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빈부격차 확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미국·영국 등을 휩쓸었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후유증이다. 시장의 힘과 개인의 자유, 규제완화가 강조되면서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고착화했다.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성장의 열매는 최상위층들이 거의 대부분 가져갔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의 평균 세전 이득은 1980년 이래 두 배가 됐고, 상위 1%와 상위 0.001%는 각각 세 배, 일곱 배 이상 늘었다. 반면에 하위 50% 평균 세전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었다. 현재 인류의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세계 부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내자 엘리트들은 전략을 바꾼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사랑과 연대, 기회와 빈곤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불평등 시스템을 유지하려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사소한 결점만 고칠 뿐 실제로는 부유층 체제를 변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 엘리트들과 오버랩된다. 이념적으로는 정의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실생활은 사적 이익에 민감한 ‘강남 좌파’나 ‘착한 기업’이나 사회적 공헌을 내세우는 대기업 등 좌우 모두 마찬가지다. 저자는 불공정과 양극화 해결을 주장하는 엘리트들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비판한다. 인자한 부자와 권력자들은 평등과 정의를 위한 ‘고결한’ 싸움을 벌이는 듯 보이지만 사회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올라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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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켓 월드’라는 개념을 내세워 엘리트 사회를 낱낱이 파헤쳤다. ‘마켓 월드’는 현 상태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도 해내는 신흥 권력 엘리트 세계다. 계몽된 사업가, 자선단체, 학계, 언론, 정부, 싱크탱크 등이 속한다. ‘마켓 월드’는 하나의 네트워크이자 커뮤니티이면서도 일종의 문화이자 정신 상태이기도 하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자선행사장 등에 모여 사회 문제를 그들 식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절망을 절대로 해결하지 않는다.

또 저자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식 소매상’라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전 손택, 윌리엄 버클리, 고어 비달 등 기존의 ‘공공지식인(public intellectuals)’과는 다르다. 지적 생산을 후원하는 대부호들과 어울리는 유형으로, 토머스 프리드먼, 니얼 퍼거슨, 파라그 카나 등을 지목했다. 이들은 승자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를 홍보하는 위선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들의 해악은 시스템 변화보다는 ‘희망에 찬 해결책’을 강조해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의식을 막는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거침 없는 문장으로 엘리트들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가운데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서평에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인자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돕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지난 20년간 세계화·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밝히는 책들이 다수 나왔는데 이제 새로운 장르가 나올 때”라며 이 책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 책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의해 2018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1만8,000원.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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