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요리사를 셰프, 주방장을 총괄셰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셰프라는 표현이 익숙해 진 것은 10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해외 여행객들이 늘면서 해외에서 별 달린 맛집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이 셰프를 입에 담기 시작했고요, 실제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유명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1세대 셰프들이 한국으로 컴백해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셰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여기에 덩달아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대중의 ‘먹방 열풍’은 셰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요. 유명 레스토랑의 키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셰프의 방송 출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은 이제 연예인들과 다름 없는 셀렙이 됐습니다.
몇 년 사이 호텔 문턱이 낮아짐에 따라 젊은 층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최근 고급 호텔들은 스타 셰프를 무기 삼아 미식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호텔들이 존재감 넘치는 셰프를 각자 품에 안아 이번처럼 맛의 차별화를 외치는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호캉스(호텔에서의 바캉스를 뜻하는 신조어)가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을 정도로 호텔 문턱이 낮아진데다 호텔과 일반 레스토랑과의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젊은 층의 발걸음을 모을 수 있는 셰프 레스토랑이 어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반얀트리 ‘페스타 바이 민구’의 강민구=요즘 반얀트리 앤 스파 서울은 새로운 식구를 맞아 들떠 있습니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페스타 바이 민구’의 총괄 셰프로 선임돼 오는 7월 8일 그의 첫 요리를 선보인다는데요.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강민구 셰프는 자연스레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거쳤지만 해외 레스토랑에서 색다른 한식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은 꿈을 키웁니다. 그렇게 미국, 스페인, 바하마 등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면 어디든 찾아 나섰죠. 결국 그는 그 유명하다는 미국의 일식당 ‘노부(Nobu)’의 바하마 지점에서 2010년 12월부터 약 2년간 최연소 총괄 셰프로 이름을 새겼죠. 지난 5년 간의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강 셰프는 2014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모던 한식 레스토랑인 ‘밍글스(Mingles)’를 열었고 이는 대박이 났습니다. ‘서로 다른 것끼리 조화롭게 어우르다’라는 의미의 밍글스는 미쉐린 2 스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잡았죠.
강 셰프는 페스타에서 자신이 직접 개발한 다양한 유러피안 요리를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가 운영 중인 캐주얼한 모던 한식 레스토랑인 밍글스와 어떻게 차별화되고 호텔에 맞게 격상될지 궁금하네요. 그가 새로 펼칠 다이닝의 세계는 아직 공개는 안됐지만 유러피안 콘셉트의 ‘어번 그린 다이닝’이라고 합니다. 이에 걸맞게 레스토랑 곳곳에 식물을 배치하고 싱그러움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프리이빗 빌라 느낌으로 레스토랑을 구성했습니다. 잠시라도 도심에서 피해 있고 싶다면 싱그러운 페스타 정원 속에 들어와 식사만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겠죠.
호텔 다이닝이라고 하면 사실 단품 보다는 코스를 떠올리죠. 강 셰프는 자유로운 유러피안 음식을 단품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격대는 2만~3만원대로 젊은 여성층을 공략하고 나섰죠. 해산물을 많이 활용한 지중해풍의 샐러드와 제철 생선구이, 비건음식과 키즈 메뉴 등을 다채롭게 구성해 젊은 층을 확실히 끌어 안겠다는 복안입니다. 호텔 음식의 매력은 역시 신선한 식재료인 만큼 강 셰프는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요리로 아트를 만들겠답니다. 그는 “과거 유럽의 친구들과 자주 만들어 먹었던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된 페스타 바이 민구의 메뉴에 그 시절의 시간과 공간, 추억을 담으려 한다”며 “자연이 주는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귀띔합니다.
◇레스케이프 ‘라망 시크레’의 ‘손종원’=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 1위를 차지했던 코펜하겐의 ‘노마’를 시작으로 경력을 쌓아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퀸스’에서 수석 셰프를 역임한 그죠. 사실 그는 미국에서 로즈할만 공대를 다니다가 대학교 4학년 때 뉴욕에 놀러 갔다가 갑작스레 학교를 그만두고 2010년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a) 스쿨에 편입하면서 요리와 인연을 맺었답니다. 유명한 레스토랑 셰프를 지내던 그는 레스케이프가 생기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레스케이프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 총괄 셰프로 자리를 옮깁니다. 저처럼 정색한 양식 보다는 한식스러운 양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적인 요소와 테마가 한가득한 파인다이닝의 세계를 펼칩니다. 매일 아침 직접 장을 보는 손 셰프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의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다”며 제철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요.
라망 시크레의 식탁을 보면 스토리가 담겨 있으며 고객은 요리와 그 뒤에 숨은 셰프와 즐거운 소통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제주의 봄을 표현했던 유채를 활용한 봄 메뉴부터 대저 토마토를 활용해 투명하고 맑게 표현한 ‘대저 토마토 가스파쵸 콘소메’ 등 시즌에 맛볼 수 있는 한국의 먹거리를 양식당에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가든에서 온 한입거리들’로 표현한 애피타이저는 손으로 먹어보는 쁘띠 당근, 래디쉬, 근대와 세발나물, 참나물을 곁들인 ‘한우와 한국의 나물들’, 괭이밥나물과 땅콩호박으로 표현한 ‘초여름 미네스트로네’ 등 한국의 초여름을 담은 요리들은 오감을 들뜨게 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동해산 오징어를 갈아 말린 뒤 유자 요거트 드레싱을 곁들인 어린이 손바닥 보다도 작은 ‘맥반석 오징어’, 쪄낸 전복을 넣은 손가락 만한 ‘전복 핫도그’, 칼국수 맛을 낸 ‘복주머니’ 모양의 크레이프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니요.
◇르 메르디앙 허우의 ‘후덕죽’=지난 5월 10일 론칭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후덕죽은 지난 42년간 신라호텔 팔선을 오픈하고 이끈 중국 요리의 전설로 불리는 후덕죽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건 첫 레스토랑입니다. ‘후덕죽 사단’이라 불리는 재야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광동식 퀴진을 기반으로 한 중국 4대 요리를 선보이고 있죠. 정상급 소믈리에 3명이 상주하며 코스에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 차, 맥주, 중국주 등을 선택해 중식과 다양한 음료의 마리아주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식 레스토랑으로는 유일무이하게 1,000병을 보관할 수 있는 대형 와인셀러도 있답니다. 중식이라고 모두 기름지진 않습니다. 코스 요리의 70% 이상을 튀기지 않은 메뉴로 구성했지요. 그의 필살기는 자신이 한국에 최초로 들여온 중국 최고의 보양식인 ‘허우 고법 불도장’이랍니다. 오골계, 자연송이, 건 관자, 건 해삼, 샥스핀 등 15가지 산해진미를 6시간 이상 푹 고았는데요 하루 30인분 한정 판매라니 장쩌민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가 “본토 요리 보다 훌륭하다”는 그의 불도장을 맛보려면 1일 30등 안에 들어야 하겠습니다. 후덕죽 셰프는 “죽생 제비집, 길품 통전복 찜, 소룡포 등 중국 황실에서 즐겨 먹던 일품 요리를 즐기러 오라”고 유혹합니다.
◇포시즌스 ‘아키라 백’의 백승욱=지난 3월 오픈한 아키라 백의 일식당 ‘아키라 백’은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에게 제격인 듯 합니다. 이 일식도 한식을 기반으로 했는데 요즘 호텔가의 모든 외국 음식은 죄다 한식을 재해석한 것이 트렌드인가 봅니다. 아키라 백에 들어서면 그의 어머니인 백영희 작가의 그림 ‘포레스트’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숲 속의 나무, 꽃, 바위, 바람, 새를 모티브로 한 작품 앞에서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아키라 백은 음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의 하우스 파티 요리를 6년 째 총괄하고 있는데요, 청담동에 ‘도사 바이 백승욱’이라는 미쉐린 1스타 퓨전 한식 레스토랑도 운영 중입니다. 그 역시 한국인 출신으로는 최초이자 최연소로 일식당 ‘노부’의 총괄 셰프를 거쳤고요. 그의 이름을 딴 모던 스타일의 레스토랑과 바가 토론토, 방콕, 하노이, 싱가포르, 뉴델리, 자카르타, 두바이 등에 진출했죠. 일식당이라고 하지만 이게 피자인지 과자인지 호기심이 생기는 튜나, 버섯 피자가 시그니처 메뉴로 일품입니다. 바삭한 또르띠아 위에 마요네즈와 마늘을 넣어 만든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슬라이스한 양파, 참치, 새송이 버섯, 트러플 오일을 얹어 세상에 없던 맛을 구현해냈습니다. 한입 사이즈의 타코 안에 다진 양파, 한우, 토마토 퓨레를 더한 AB 한우 타코, 다진 버섯으로 만든 크로켓 위에 간장에 절인 도화 새우와 성게알을 얹고 그 위에 캐비아를 올려 바삿한 식감을 연출한 송로버섯 크로켓이나 와사비를 넣어 매콤한 소스로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잡아 준 한우 NY 스트립 등은 사실 이 곳이 일식당인지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새로운 일식의 향연을 누리게 됩니다.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가니에르=국내에서 제일 먼저 미쉐린 스타 셰프 레스토랑을 연 사람은 요리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프랑스인 피에르 가니에르가 꼽히죠. 지난해 9월 리뉴얼을 통해 컴백한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현대적이지만 더욱 한국적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태안산 굴, 제주산 옥돔과 한라봉, 꿩 등이 등장하는 정통 프렌치 요리를 보셨나요.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식재료가 어떻게 프렌치 퀴진을 만나 변주를 만들어내는지 궁금하다면 기존 서비스 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1시간 코스 ‘알레그로 서비스(런치 코스)’를 추천합니다. 가니에르 셰프는 지난 3월에 맛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7월에 셰프들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 정도로 새로운 음식을 창조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할 정도로 열정적인 셰프로도 유명합니다.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