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홍기석 칼럼]물가안정과 최적물가지표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실물경기 체계적으로 반영하려면

CPI뿐 아니라 복수의 지표 살펴야

작년 월임금총액상승률 높았지만

실물경기 호황으로 보기는 어려워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실물경기와 물가상승률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곡선은 정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통계적 규칙성이다. 그런데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년간 일부 국가들에서 실물경기의 회복세에도 물가상승률이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필립스곡선이 더 이상 현실 경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지난 2018년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음에도 소비자물가(CPI) 인플레이션율이 장기 평균치인 2%보다 낮은 1.9%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물가상승률 지표로서 CPI 인플레이션율 대신 명목임금상승률을 사용해 최근까지의 고용 지표와 비교하면 필립스곡선이 여전히 현실 경제와 잘 부합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필립스가 1958년에 발표한 것도 CPI 인플레이션율이 아닌 명목임금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관계였다. 이는 CPI보다 명목임금상승률이 경기 상황을 보다 잘 반영하며 따라서 인플레이션 타기팅의 지표로서 CPI보다 명목임금상승률이 더 적합할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통화정책은 결국 그 정책이 타깃으로 하는 물가상승률의 지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본위체제는 금 가격만을 타깃으로 하며 고정환율제는 외환 가격만을 타깃으로 한다. 그렇다면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 타기팅을 표방한다고 할 때 그것이 굳이 CPI 인플레이션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통화정책 당국이 CPI만이 아니라 자산 가격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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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볼 때 생계비를 측정하기 위한 물가 지표와 경기 안정화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물가 지표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생계비 지표에서 비중이 높은 품목일수록 안정화 정책을 위한 물가 지표에서는 오히려 비중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한다. 그 직관적 이유는 통상적인 인플레이션 타기팅하에서 CPI를 안정시키기 위해 통화정책이 이뤄질 경우 반대급부로 실물경기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맨큐는 CPI 타기팅에서 명목임금상승률을 포함하는 새로운 가격 지표 타기팅으로의 전환이 이뤄질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변동성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과가 얻어지는 근본적 원인은 CPI보다 명목임금이 실물경기 상황을 보다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CPI 타기팅보다 명목임금 타기팅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명목임금 타기팅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CPI 인플레이션율은 임금 협상에서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는데 만일 명목임금상승률을 통화정책의 지표로 사용하게 된다면 임금 협상시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실적 요인들 때문에 실제로 명목임금 타기팅을 채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부분의 국가들은 CPI 인플레이션율의 안정 외에 실물경기의 안정을 추가적인 통화정책 목표로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경기 지표로서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며 CPI와의 상대적인 비중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타기팅하에서 통화정책이 실물경기를 보다 간단하고 체계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CPI만이 아니라 복수의 가격 지표들을 고려하는 접근이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현재 CPI 인플레이션율은 1.5%로 목표치인 2%보다 낮지만 월임금총액상승률은 4%를 초과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임금 상승은 상당 부분 2018년의 이례적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것으로서 실물경기의 호황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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