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월드컵. 푸른색 유니폼을 입어 ‘레블뢰(Les bleus)’로 불리던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아트사커를 선보이며 월드컵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다. 프랑스 정부는 축구대표팀 22명 전원에게 프랑스 최고의 명예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a Legion d’honneur)’를 수여했다.
레지옹 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 1세가 전장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제정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만든 생루이훈장을 수정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종교 등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된다.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은 레지옹 도뇌르를 받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친다.
레지옹 도뇌르는 그랑크루아(Grand Croix·대십자), 그랑도피시에(Grand Officier·대장군), 코망되르(Commandeur·사령관), 오피시에(Officier·장교), 슈발리에(Chevalier·기사) 등 5개 등급이 있다. 명예를 높이기 위해 등급별로 인원을 제한한다. 명예로운 삶을 산 개인에게 수여하기 때문에 훈장을 받았더라도 명예를 지키지 못하면 취소된다.
문화예술계의 유명한 수상자로는 화가 샤걀·밀레, 패션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이브 생로랑, 가수 폴 매카트니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고(故) 조중훈·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부자가 두 번째 등급인 그랑도피시에를 받았다. 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코망되르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명예로운 훈장이지만 수상을 거부한 사례도 적지 않다.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는 인권단체의 비난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도 수상을 거부했다.
영국의 국민가수 엘턴 존이 레지옹 도뇌르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3,500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전 세계에서 2억5,000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팝 음악계의 전설이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엘턴 존이 “피아노의 명인, 멜로디의 천재이자 진정한 쇼맨”이라고 밝혔다. 레지옹 도뇌르는 은퇴를 앞두고 월드 투어 중인 엘턴 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김정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