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기 짝이 없다.”
지난 21일 오후 입헌민주당 등 일본 주요 야당 4곳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이 같은 평가를 내놓으며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참의원에 제출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에 대한 문책 결의안과 불신임 결의안이 부결된 직후였다. 야당 측은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폭거와 어리석은 행동을 목격했다”며 “국민을 경시하는 오만한 자세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은 오는 24일 표결한다.
일본 정계에서 부총리와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노후자금 2,000만엔’ 보고서가 있다. 해당 보고서는 만 65세 남성과 만 60세 여성 부부가 앞으로 직업 없이 살아갈 경우 공적연금 외에 추가로 2,000만엔(약 2억원)의 저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연금정책의 실패를 증명한 셈이라며 거센 비판의 물결이 일었다. 특히 아베 정부가 그동안 공적연금의 보장성을 강조하면서 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해온 만큼 비난의 화살은 아베 총리에게 집중했다.
야당 측은 내달 참의원 선거 정국에 정부의 연금 실패 이슈를 활용하기 위해 맹공을 펼쳤다. 이에 여당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점점 더 수세에 몰리면서 급기야 아베 총리의 입에서 “금융청은 엄청난 바보들”이라는 말이 나오기 까지 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금융청 보고서에 대해 야당의 추궁을 당한 뒤 주위에 “금융청은 엄청난 바보(大バカ者)다. 그런 것을 적다니”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베 총리가 격노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사태 진정에 애를 쓰고 있지만 여당 자민당 내에서는 과거 연금 문제로 선거에서 참패했던 ‘사라진 연금’ 사태가 다음 달 말 참의원 선거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5,000만건에 달하는 국민연금 납부기록을 분실했는데 이는 ‘사라진 연금’ 사건으로 불리며 국민의 분노를 낳았다. 이를 계기로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이듬해 정권을 민주당으로 넘겨줬다.
실제 아베 정부의 인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5~16일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부 지지율은 3%포인트 하락한 40%를 기록했다. 특히 아소 부총리가 “정부 입장과 다른 보고서”라고 해명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68%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재무성의 자문기관 ‘재정제도 등 심의회’가 여당을 배려해 연금의 보장성 문제에 대한 부분을 삭제한 보고서를 내 논란이 더 확산할 전망이다. 심의회는 당초 이 보고서의 초안에 ‘공적연금 수급 수준의 저하가 예상되니 자조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넣었지만, 최종본에는 빠졌다.
도쿄신문은 이와 관련해 아베 정권이 금융청 보고서로 야권의 비판을 받는 가운데 연금 수급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빼서 아베 정권을 배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