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헌법정신과 ILO 협약의 충돌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ILO 협약은 정상적 노조 전제

기형적 관행 누리는 한국 노조

비준부터 요구..헌법정신 위배

민노총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김태기 단국대 교수김태기 단국대 교수



국제노동기구(ILO)협약 비준을 민주노총이 결사적으로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도움으로 당선됐기에 그런지 모른다. 헌법에 따라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에(헌법 제6조 1항) ILO협약은 비준되면 국내법이 된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제가 쑥대밭이 된 지금에서야 정부가 비준에 나섰지만 대다수의 살기 힘든 국민은 난데없는 일로 보는 듯하다. 기력이 쇠한 기업은 서슬 퍼런 정권의 눈치를 본다고 대놓고 반대하지 않지만 ILO협약 비준은 노동조합에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판을 붕괴시킨다고 주장한다.

ILO협약 논란의 핵심은 근로자나 사업주가 단체를 자유롭게 만드는 결사의 자유에 있다. 민주노총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노동조합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폭력적인 집회시위가 넘쳐나기에 사람들은 논란에 어리둥절해한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민주노총이 ILO협약 비준에 매달리는 이유는 노동조합 지위를 상실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살리기에 있다. 전교조는 민주노총의 핵심 중 핵심으로 정치·선거 활동으로 해직된 교사의 조합원 자격 때문에 지위를 상실했다. 전교조 문제는 결사의 자유가 아니라 법치주의의 문제였고 전교조 살리기는 법치주의 부정과 특권 요구가 된다.


지난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헌법이 개정돼 ‘87체제’가 만들어졌다. 헌법이 그리는 세상은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갖고, 근로의 의무를 지며(헌법 제32조 제1항과 제2항),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지고(헌법 제33조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고,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제119조 제1항과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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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의 현실은 헌법 정신과 달랐다. 본말이 전도돼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중심이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강성 노동조합에 눌려 근로의 권리가 침해됐고 노동조합 특권은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으로 소득분배를 악화시켰으며 경제민주화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87체제로 노동조합에 속한 소수의 근로자에게 고임금과 고용보호 혜택이 돌아갔지만 나머지는 고용악화와 저임금으로 시름에 빠졌다.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인 10%의 특권 노동자와 중소기업·자영업·비정규직인 90%의 서민 노동자로 노동시장이 단절되는 이중구조 문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ILO협약은 정상적인 노동조합을 전제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조합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권을 누리고 기형적인 관행에 젖어왔다. 사업주로부터 사무실에다 조합 간부의 급여까지 지원받고 파업한다고 사업장을 점거하며 파업 기간의 임금 보전을 사업주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특권 덕분에 10%의 특권 노동자는 법에다 단체협약 등으로 이중삼중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90%의 서민 노동자는 법에 의존해 일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법이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게다가 90%는 10%의 특권 노동자가 쳐놓은 기득권의 장벽 때문에 이들이 일하는 직장으로의 이동이 막혀 있다.

노동조합의 특권을 방치하고 ILO협약을 비준하면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준에 맞도록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관행을 바꾸기를 거부하며 ILO협약을 비준부터 하라는 요구는 꼼수다. 한국은 주권국가라고 말하기 어렵고 노동조합 특권과 노사의 힘의 불균형이 커져 헌법 정신에서 더 멀어지는 세상이 된다. 정부는 90% 서민 노동자의 권익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민주노총도 ILO협약 비준 요구에 앞서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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