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는 24일 카카오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해 금융위원회에 ‘신청인인 내국법인의 계열주로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 자를 포함해 심사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앞서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한도초과보유 심사 때 카카오 법인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인지, 카카오 최대주주인 김범수 의장까지 포함해 심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제처의 법령해석을 요청했다.
현행 인터넷전문은행법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이 선고됐을 경우 대주주 자격을 제한한다. 현재 김 의장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데 만약 김 의장이 심사 대상에 포함되면 공정거래법 재판이 끝날 때까지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될 수 있었다. 현재 1심에서 김 의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검찰이 항소해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법제처가 김 의장은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대주주가 되기 위한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금융권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인터넷은행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강한데다 카카오가 자본조달 능력이나 혁신성·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지난해 합병한 카카오M(옛 로엔엔터테인먼트)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으나 심사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금융위도 법률적 문제가 정리됨에 따라 곧 카카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여러 가지 봐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도 나머지는 꼼꼼히 따져볼 것”이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심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기혁·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1년 만에 1차 문턱 가까스로 넘겨...자본확충 숨통 공격영업 등 기대
■카카오 ‘카뱅 대주주’ 탄력
본지 ‘웃픈 현실’ 보도 공론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기 위한 1차 장애물을 가까스로 넘게 됐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특례법이 통과되면서 카카오 같은 정보기술(IT) 대기업도 인터넷은행 지분 34%를 확보해 대주주가 되는 길이 열렸지만 카카오는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사소한 신고를 누락한 게 화근이 돼 아직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대주주 승인을 내줄 수 있었지만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며 시간이 걸렸다. 국회가 특례법을 만들어 대주주가 되는 길을 터줬는데도 부처의 보신주의로 1년 가까이 이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카카오 중심으로 혁신적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려던 계획이나 증자 등을 통한 대출확대에도 차질을 빚었다. 금융권의 메기로 키우기 위해 탄생시킨 인터넷은행이 자칫 애물단지가 될 수 있었던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법제처가 김 의장을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관련 심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지난 4월 금융위에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지만 김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심사가 중단됐다. 법제처의 이번 결정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사 지분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실무자의 경험 부족으로 단순 과실을 저질렀을 뿐인데 인터넷은행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막힐 뻔했다”며 “이제라도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금융당국의 심사가 진행되는 근거가 마련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2016년 1월 음원 관련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로엔(옛 서울음반)을 인수하며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으로 지정됐다. 이어 그해 3월 공정거래위에 모든 계열사 지분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5개사의 신고가 누락됐다. 누락된 5개사의 총자산은 2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존재감도 없었다. 당시 카카오는 기존 대기업과 달리 상출제 제한에 따른 공정위 신고를 처음 해본 상황이라 해당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실무자가 실수로 해당 업체를 빼먹은 상항이었다. 하지만 후폭풍은 컸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특례법을 통과시키면서까지 IT업체가 인터넷은행 대주주가 되는 길을 열어놓았지만 정작 ‘신고누락’이 발목을 잡아 지금까지 대주주 적격심사로 세월을 보냈다.
카카오 측은 “신고 누락 5개사의 자산규모가 미미해 고의적으로 신고를 빼먹을 이유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공정위는 검찰에 고발했고 금융위도 보신주의와 책임회피를 위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앞두고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등 떠넘기기에 바빴다. 김 의장은 1심 법원에서 결국 무죄가 선고됐지만 검찰이 불복해 항소하면서 다시 지루한 법정다툼을 벌이게 됐다. 이 같은 사연은 본지(6월11일자) 보도로 공론화됐고 다행히 법제처에서 이날 김 의장은 대주주 적격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1차 문턱을 겨우 넘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최대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와 콜옵션 계약을 체결해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콜옵션에는 카카오가 한국금융지주보다 1주 많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대주주에 오를 경우 새로운 금융혁신을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 초 카카오뱅크는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최근 개인사업자 대출에 도전하며 영업 전략을 다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영업을 확대하려면 자본확충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해 카카오가 서둘러 카카오뱅크 대주주가 돼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자본금은 1조3,000억원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3 인터넷은행 인가가 불발된 상황에서 카카오뱅크가 지배구조 문제만 해결하면 완전한 인터넷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서 “향후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카카오가 자본확충을 주도하면 카카오뱅크의 주택담보대출 출시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뱅크 입장에서도 여신액에 비해 수신액이 지나치게 많아 대출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카카오뱅크는 올 5월 말 기준 수신규모 16조8,200억원, 여신규모 10조7,13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수많은 규제와 부처 간 주도권 싸움, 다른 부처 눈치 보기 등 혁신을 가로막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로 카카오뱅크가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금융혁신을 위해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상 대주주 결격사유에서 공정거래법을 제외하는 법률안을 상정했다. 다만 시민단체와 여당 일부의 반대가 추진과정의 변수로 꼽힌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