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 입장에 가깝다. 반면 미국의 상황과는 분명히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에 5곳의 핵시설이 있는데 1~2곳만 폐쇄하기를 원해 회담이 결렬됐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북한은 영변 외에도 평양 인근의 강선 등 5곳 이상에 핵시설을 갖고 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의 전체 핵시설 신고를 전제로 ‘영변 핵 폐기+α’를 비핵화 초기 조치로 여기고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북미는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근 “비핵화가 무엇인지 (북미가) 정의하는 데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핵 전문가들도 ‘핵 협상의 너무 작은 조각’인 영변 핵 폐기만으로는 북핵 동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장은 “영변 핵 폐기를 불가역적 단계로 규정하는 것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작은 열매의 조기 수확과 북한 달래기에 매달리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목표 달성으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오히려 낡은 영변 핵시설을 내주는 대신 슬그머니 핵 보유국으로 진입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핵 협상의 초점을 흐리지 말고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위한 공조에 집중해야 한다. 최소한 북한 핵시설 전반에 대한 신고와 함께 전체적인 폐기·검증 로드맵이 제시돼야 불가역적 조치의 입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