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관련 항소심 재판에서 잇따라 노조가 승소하면서 ‘신의칙 배척’이 법원의 판례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재판부가 소송 진행 당시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 등을 따져 신의칙을 판단하므로 모든 통상임금 소송에 일괄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신의칙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1심에서는 기업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기업들로서는 통상임금과 관련한 경영상의 부담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1·2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 기조는 확정된 대법원 판결을 따르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법원은 올해 시영운수에 이어 한진중공업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추가 퇴직금이나 추가수당을 청구하는 경우에 회사가 신의칙 항변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 판례도 있지만 대법원은 보수적으로 심리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에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전후로 결과가 달라졌다. 지난 2015년 1심 재판부였던 서울남부지법 제13부(진창수 부장판사)는 정기상여금과 생산장려수당 중 별도합의수당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개인연금보험료지원금과 생산장려수당 중 순수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법정수당을 산정할 경우 노동자들은 당초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얻게 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장기적인 경영난 상태에 있는 회사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지출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회사의 신의칙 원칙 주장을 인정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나항공·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기아자동차 등 항소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지 못하고 대법원 상고심에 올라가 있는 기업들의 통상임금 소송이 많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 상고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기업의 사건도 노조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