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이 성장하고 그룹의 모든 사업이 잘 되면서 저는 욕심을 좀 내서 ‘더 확장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제가 잘 모르는 태양광과 (극동)건설,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인수했고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중략)… 좋은 회사부터 팔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렇지만 웅진코웨이(021240), 웅진케미칼, 웅진식품 채권단의 요구대로 다 팔아서 빚을 갚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년 4개월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서울 종로구 종로스페이스 지하 1층 대강당에 나타나 수십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30여년간 이어온 경영 생활에 대해 회상했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영업맨의 신화’로 불리는 화려한 성과를 비롯해 국내 최초로 선보인 렌털 회사인 웅진코웨이의 탄생 비화까지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윤 회장은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는 렌털사업에서 다시 한번 성공하기 위해 웅진코웨이를 품에 안게 되었다고 말했죠. “기필코 저는 이것을 혼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도 내보였습니다.
이날 윤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러 등장했을 때만해도 취재를 위해 참석한 기자들은 뜨듯미지근한 반응이었습니다. 1조8,000억원대로 커버린 웅진코웨이를 과연 웅진그룹이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심을 담아 “실패한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대본도 없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 조금씩 설득이 되었죠. 그래서 윤 회장이 기자회견장을 떠날 때즈음, 많은 기자들이 박수를 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년간, 그가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 30분 넘게 전한 말들에 녹아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실제로 올해 3월 21일 웅진그룹은 MBK파트너스로부터 코웨이를 인수하는 데 성공합니다. 웅진 측은 재무적투자자(FI)와 함께 고민한 자금조달 계획서를 세웠고, 자체자금 4,000억원과 외부 조달자금 1조6,000억원 등 총 2조원을 들여 코웨이 지분 25.08%를 확보했다고 밝힙니다. 이름도 웅진코웨이로 바뀌었죠. 하지만 세 달이 지난 6월 27일, 인수합병(M&A) 시장에 웅진코웨이는 다시 매물로 나왔습니다. 렌털업계와 자본시장에서는 ‘꺼진 불’이라고 생각했던 웅진코웨이가 다시 주인을 찾게 되자 상당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난해 10월 웅진코웨이에 대한 공식 인수발표를 직접 귀로 들었던 기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웅진그룹은 그룹 전체로 다가올지 모르는 재무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세운 자금 조달 계획은 촘촘하기는 했지만 계열사인 웅진에너지(103130)가 기업회생절차를 밟을 정도로 심각하게 무너질 것을 전망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 3월 27일 웅진에너지는 외부감사 결과 담당 회계법인이 ‘의견 거절’로 결론을 내면서 크게 흔들립니다. 태양광 사업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탓이었습니다. 잉곳과 웨이퍼를 생산하는 웅진에너지는 중국에서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규모경제를 달성한 기업들이 쏟아내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적자가 쌓여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업황이 반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에 회계법인으로서는 ‘의견거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풀이도 뒤따릅니다. 그 결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관련 규정에 따른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웅진에너지의 주식 거래를 중지시키기도 합니다.
이른바 ‘웅에사태’로 불리는 이 일로 웅진그룹의 입장은 난처해졌습니다. 웅진코웨이 인수 계약서에 사인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터진 일입니다. 그룹 관계자는 당시 웅진에너지가 의견거절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합니다. 외부감사법이 개정된 후 깐깐해진 외부감사의 기준이 웅진에너지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었죠. 이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은 웅진에너지 등급을 기존 ‘B-’에서 ‘CCC’로 깎고 투자하기 적절하지 않은 회사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 여파로 웅진그룹의 회사채의 신용등급은 ‘BBB+’에서 ‘BBB-’로 하락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회계감사 이슈로 회사채 시장이 상당히 위축돼있어 웅진씽크빅(095720)이 발행한 전환사채(CB)가 시장에서 잘 팔려야만 무리없이 차입금을 값을 수 있는 계획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죠.
여기에 웅진그룹이 인수과정에서 ‘믿는 구석’으로 생각했던 웅진씽크빅마저 차입금이 많다는 이유로 자본시장에서 우려섞인 의견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성장동력인 웅진코웨이를 인수한 웅진그룹이 오히려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것도 이 시점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룹 관계자 역시 “신용등급이 떨어지며 차환(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신규대출을 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한 달 남짓한 사이에 그룹 신용등급이 두 단계 급하락하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웅진그룹은 이 여파가 그룹 전체로 다 퍼지기 전에 발빠른 대처로 되팔고 현금 확보에 힘 쓰는 것이 궁극적으로 옳은 길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지난 1·4분기 역대 최대 실적(7,093억원)을 올린 웅진코웨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2018년도 매출은 2조7,000억원에 영업이익은 5,200억원을 기록했죠. 국내외 렌털 계정만 700만을 넘어섰을 정도로 단연코 렌털업계의 1인자입니다. 꾸준한 현금흐름이라는 강점을 지닌 이 회사의 주인이 누가 될지에 대해 시장은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거론되는 기업은 삼성전자나 GS, SK 등 대규모 인수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곳이자 기존 사업에 렌털 플랫폼을 더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곳들입니다.
렌털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교원그룹·현대렌탈케어·청호나이스 등과의 협업을 통해 법인 대 법인(B2B) 영업 형식으로 렌털 업계에 발을 디딘데다 지난 5월에는 ‘2019 코리아렌탈쇼’에 단독 부스를 설치해 유력한 후보로 꼽힙니다. 의류청정기인 ‘에어드레서’, 의류건조기인 ‘그랑데’ 등 렌털 상품화하기 좋은 가전이 준비돼 있다는 점도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근거죠.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주력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어서 삼성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렌털 업계 2위인 SK매직도 유력한 후보로 꼽힙니다. 물론 모기업인 SK네트웍스가 AJ렌터카를 인수하는 등 굵직한 M&A를 단행한 만큼 현금 여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과 그룹의 높은 신용도 등이 뒷받침되면 문제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맞서고 있죠. MBK파트너스가 웅진코웨이를 보유하고 있을 때 매수를 검토했던 만큼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의중이 이번 인수전 참가에 핵심조건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GS그룹도 렌털 사업에 관심을 가진 곳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전면에는 GS리테일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GS리테일은 내부적으로 정수기와 렌터카 사업 등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백화점 등 유통망을 갖춘 롯데그룹도 렌털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어느 곳이 주인이 되든 다시 팔리는 웅진코웨이 입장은 견실한 렌털 플랫폼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오염원을 찾아 청정하는 모션인식 케어가 특징인 ‘액티브액션 공기청정기 아이오케어(IoCare)’를 비롯해 의류 건조와 의류청정, 공기제습과 공간청정까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사계절 의류청정기 더블케어’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 온 전략은 꾸준히 이어나가겠다는 포부입니다. 하지만 새 주인을 찾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회사 임직원들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죠, 모쪼록 한국 렌털의 산증인인 웅진코웨이가 좋은 임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