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학생연구원 컴퓨터 일반근로자 처럼 일정시간 지나면 꺼져

'학생신분'이면서도 '근로자' 지위 갖는 학생연구원

저녁시간 아이디어 떠올라도 연구 어려워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석·박사과정 등을 밟는 학생연구원들은 요즘 주 52시간 근로제도 문제로 심란하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국내 출연연(국가보안연구소 제외)에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학생연구원들은 공부·연구 활동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마치 생산직 근로자처럼 주 52시간의 제약을 받게 됐다. 출연연 학생연구원들은 ‘학생 신분’이면서도 대부분이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정부가 학생연구원들에게도 근로자의 지위를 주는 정책(학생연구원 운영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는데 학생연구원들의 권익을 높여주려던 정책이 이후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와 얽히면서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제약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됐다.


학생연구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을 받길래 뿔이 난 걸까. 출연연내 개인용 컴퓨터(PC)들이 일과 시간중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꺼진다. 학생연구원들은 일반근로자의 근로시간(주당 40시간, 하루 8시간)의 기준을 적용받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는 지 당국이 일일이 따라다니며 체크하기 어려우니 아예 PC의 작동 시간에 제약을 거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연구원들은 학위 취득을 위한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저녁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연구를 하려고 해도 PC에 저장했던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 학생연구자 이유진(가명)씨는 “주 52시간제의 좋은 취지는 이해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라고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며 “학생들의 이런 불만을 정부 관료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별다른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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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과 학생들 불만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출연연들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안으로 학생연구원들에게는 PC 전원 강제 종료 대신 근로계획표를 작성하게 하고 정해진 시간을 벗어난 연구는 근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율적인 학습활동을 한 것이라는 점을 일일이 본인에게 확인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도 있다.

학생연구원이 아닌 출연연의 일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근로 기준시간을 넘어선 활동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출연연 대부분이 인건비 예산이 빠듯해 제대로 수당을 주기 어려운 구조다. 출연연들은 수당 대신 보상휴가를 주는 차선책을 모색 중이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기존의 연차휴가도 보수적인 조직문화와 넘쳐나는 연구 업무로 제대로 쓰기 어려운 판국이어서 보상휴가를 받아도 실질적으로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서류상으로만 ‘보상휴가’를 쓴 것으로 처리하고 실제로는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무임금 초과근로’를 정부가 출연연 연구자들에게 강제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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