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비무장지대(DMZ) 남북미 정상회담이 30일 성사되면서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되살려냈다.
다만 외교·안보전문가들은 북미가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근본적인 셈법을 변화했다는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 만큼 실무급에서 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인 협상과 합의를 하겠다는 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북한의 선(先) 핵 신고·검증을 주장하는 것으로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단계적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
2월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주된 원인도 이 같은 북미 간의 비핵화 입장 차였다. 당시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따른 상응조치로 제재완화를 요구하며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영변 핵 시설 플러스 알파 등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후 제재완화라는 ‘일괄타결식 빅딜’로 맞서면서 하노이회담이 결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면서도 제재완화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부분도 실무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준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근본적인 동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대북제재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제재를 한 번 풀 경우 복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일부 비핵화 조치만으로 제재를 풀기가 쉽지 않다.
서울경제신문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완화에는 관심 없다고 했는데 북한이 원하는 게 제재완화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를 것 없다고 한 상황에서 실무회담을 해본들 특별한 수가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영변 플러스 알파를 들고 나올지도 여전히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상 간 의지가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교적 특성을 고려할 때 북미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할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하루 만에 북미 정상이 트윗에 반응을 보이면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북미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신뢰가 여전하고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타결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실제 지난 하노이 노딜 이후 중단된 북미 대화는 1시간도 채 안 되는 정상 간 벼락회동을 통해 재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실무팀을 2~3주 내에 구성한다고 밝힘에 따라 북미 실무협상은 이르면 7월 재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대미협상은 외무성 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나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결국은 외무성 쪽 인사가 대표를 맡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관건은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 플러스 알파로 내놓을 카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경펠로인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미 간 타협의 여지는 있다. 북한이 실리냐, 명분이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며 “실리를 취하면 영변 핵 시설 외에 추가 핵 시설이 있고 이미 생산한 핵미사일과 핵물질도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완화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수용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박우인·양지윤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