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관점] 디지털경제 확산에 '긱워커' 급증…지위 규정·보호장치는 걸음마

■공유경제와 노동의 미래

차량 공유 운전자·배달 라이더 등

美·유럽 경제활동인구의 20~30%

韓은 특수근로자 중 55만명 추정

노동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 못받고

근로자와 자영업자 경계에 위치

종사자 보호 수준 나라마다 제각각

새로운 노동에 대한 논의 서둘러야

우버의 IPO를 하루 앞둔 5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우버 본사 앞에서 운전자들이 플래카드를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블룸버그우버의 IPO를 하루 앞둔 5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우버 본사 앞에서 운전자들이 플래카드를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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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량공유 서비스 업계 1위 우버가 기업공개(IPO)를 앞둔 지난 5월8일. 미국·영국·호주 등지에서 우버와 리프트 운전자들이 동맹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서비스를 고객과 연결해주는 모바일 앱을 껐다. 대신 ‘우버는 들어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병가 미준수 등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네 알고리즘을 파괴할 것’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펼쳤다.


#2. 노동절인 5월1일. 모바일 앱으로 일감을 받는 배달 라이더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노동조합 결성식을 열었다. 이들은 맥도날드 배달 라이더인 박정훈씨를 초대 노조위원장으로 뽑고 기본 노동권 보장과 오토바이 보험료 인하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가두행진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가 전체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긱워커(gig worker)’가 양산되고 있다. 긱워커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비정규직 형태의 일감을 받아 돈을 버는 독립형 단기 계약자다. 우버·리프트 등 차량공유 서비스 운전자, 유통이나 각종 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1인 계약자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달 라이더가 대표적이다.

긱워커가 늘어가면서 해외에서는 이들의 법적 지위와 사회안전망 등 보호장치를 어느 정도까지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논의가 제한적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중심의 혁신성장 담론에만 매몰돼 있다. 혁신의 이름에 긱워커의 기본권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경제구조와 노동 형태도 바뀐다. 분명한 흐름은 고용시장이 계약직과 임시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을 과보호해서도 안 되지만 혁신이나 효율성만 앞세운 시장논리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며 “인간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경제 확산으로 보편화되는 ‘긱워커’=디지털 플랫폼은 터미널이나 장터처럼 특정 재화를 공급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한다. 수집한 빅데이터를 가공해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맞춤형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가격에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자동차·사무실·주택·음식·각종집기·노동·서비스를 수요에 맞춰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대가로 중개수수료를 챙긴다. 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O20·Online to Offline)나 온디맨드(On demand)가 대표적인 디지털 플랫폼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첨단 산업뿐 아니라 전통 제조업까지 수많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O20·온디맨드 활성화로 긱워커가 창출하는 긱이코노미의 부가가치가 오는 2025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2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임이 분명하다. 차량·숙박 등에서 시작해 이제 배달·청소 등 단순노동 서비스로 확장됐고 최근에는 변호사와 컨설팅 등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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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에서 긱워커로 일하는 사람들의 수치는 국가별·조사방식별로 편차가 있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아직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20~30% 수준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최근에야 노동연구원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220만9,000명(지난해 말 기준) 가운데 55만명 정도를 긱워커로 분류했다.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디지털 경제=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은 정당한 수익모델 분배와 노동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디지털 플랫폼의 수익 모델이 기업만 살찌우는 기형적 형태라는 주장이다.

우버는 모바일 앱으로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주고 건당 20~25%의 중개수수료를 받지만 세금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는 물론 건강보험·산업재해·퇴직금 등 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버는 세금을 내면서 복리후생을 제공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이용자들의 혜택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반면 운전자들은 우버·리프트가 천문학적 규모의 주식공모로 돈 잔치를 벌이는 이면에는 근로자들을 쥐어짜는 착취 구조가 있다고 주장한다. 긱워커는 본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노동을 제공하고 이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당 노동과 서비스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저자 가이 스탠딩은 디지털 플랫폼이 빈부격차를 더 키우는 신생 불로소득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긱워커를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는 계층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분류했다.

긱워커들이 제공하는 노동의 형태는 기존 근로자와 분명히 다르다. 노동이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이나 심지어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진다. 보수는 임금노동자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우버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긱워커의 노동과정을 고객의 별점이나 리뷰 등 평가를 통해 관리한다. 노동의 성과 측정과 제재를 위한 통제기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절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긱워킹이 미래의 지배적인 노동형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플랫폼 노동자는 전통적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며 “이들에 대한 법적 체계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입법과 정책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달 라이더들이 5월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노조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배달 라이더들이 5월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노조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피고용인인가, 자영업자인가…법제화 움직임은=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있는 긱워커에 대한 입장은 국가별로는 물론 국가 내에서도 엇갈린다. 영국은 2017년 11월 우버 운전자를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우버와 운전자는 승객을 연결해주고 중개수수료를 받는 협력관계가 아니라 법정휴가와 최저임금을 보장해줘야 하는 고용관계라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우버식 공유경제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연방과 개별 주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하원은 5월 말 우버·리프트 등이 플랫폼 종사자 등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립계약자로 만드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수십만명의 긱워커가 노동자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미 노동부와 연방기관인 노동관계위원회(NRLB)는 우버 기사의 지위를 근로자가 아닌 독립계약자로 간주하고 있다. 운전자가 근무일정을 자율 결정하며 다른 운전자들과 자유 경쟁하면서 사업기회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부를지에 대한 법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긱경제 활성화로 비경제활동인구의 노동 참여가 촉진될 수 있지만 고용의 질이 낮고 소득 안정성이 떨어지는데다 종사자들이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麟) 테크앤로 부문장(변호사)은 “기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노동과 일을 둘러싼 새로운 법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기업도 앞으로 닥쳐올 노동의 미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어떤 노동의 미래를 만들어갈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mckids@sedaily.com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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