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1945년 미 군정 시절 경무국 창설일이 아닌 1919년 임시정부 시절 경무국이 경찰의 뿌리라며 별도의 기념일을 지정하기로 했다. 학계는 물론 경찰 내부적으로도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오는 8월12일을 ‘임시정부 경찰기념일(임정 기념일)’로 지정하고 경찰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첫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사실상 경찰의 뿌리가 1945년이 아닌 1919년 임시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임정 경찰과 독립유공자 출신 경찰관 유족,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 경찰관 출신 국회의원, 대통령 직속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다.
임정 기념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초대 경무국장(현 경찰청장)으로 취임한 날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서 임시정부조직법이 공포된 4월25일에 내무국 설치와 함께 경무국 직제와 서무가 처음으로 규정됐지만 ‘대한민국 1호 경찰’인 김구 선생의 경무국장 취임일을 기념일로 최종 결정했다. 임정 경찰이 실질적으로 구성돼 활동한 날을 기념하겠다는 취지다. 또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국가기념일인 법의 날(4월25일)과 겹치는 문제도 내부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그동안 미 군정 산하에서 초대 경무국장을 맡은 조병옥 박사가 임명된 날(10월21일)을 경찰을 대표하는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따라서 경찰은 기존에 70년 넘게 이어져 오던 경찰의 날을 유지하면서 임정 기념일도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경찰의 출발을 기리는 행사가 1년에 두 차례 열리게 된다. 한 조직의 뿌리가 임정과 미 군정 시절의 두 개로 나뉘는 꼴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임정 기념일과 마찬가지로 기존 경찰의 날 역시 실질적으로 일제 경찰이 물러나고 한국인으로 경찰조직이 구성된 날인 만큼 의미가 있다”며 “근대 경찰이 시작된 경찰의 날과 임정 시절 경찰을 모두 인정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앞으로 임정 기념일을 경찰 공식 기념일로 이어갈 계획이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물론 역사 학계에서도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역사를 정의하는 문제를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2017년 성차별과 중복 논란으로 폐지된 여경의 날(7월1일)처럼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려면 내부적인 공감대와 학계의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며 “역사적 고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를 규정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찰의 역사도 바뀌는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