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포퓰리즘 무상급식, 비정규직 파업 불렀다

진보교육감 무상급식 경쟁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뒷전'

학생 130만명 급식대란 피해

민주노총 산하 전국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나선 3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이 중단되자 학생들이 빵과 주스를 먹고 있다.  /성형주기자민주노총 산하 전국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나선 3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이 중단되자 학생들이 빵과 주스를 먹고 있다. /성형주기자



학교 비정규직 2만2,000여명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전국 초중고 130만여명의 학생들은 빵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밥’을 볼모로 한 급식파업이 2~3년마다 반복되는 의례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후 무상급식 경쟁이 벌어지면서 이에 따른 비용이 해마다 급증해 학교 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 뒤로 밀리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3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소속 근로자들이 파업을 강행하면서 전국 1만438개 급식 대상 학교 중 2,572개교에서 급식이 중단됐다.



해당 학교들은 점심시간에 빵이나 도시락을 제공하거나 단축수업에 나섰다. 학비연대를 비롯한 공공 부문 비정규노동자 총파업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경찰 추산 3만2,000여명이 모여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처우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날 총파업의 주축세력은 학비연대로 2만여명이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대규모 급식파업에 정부와 학교 비정규직을 향한 비판도 거세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과 함께 학비연대를 고용한 지역 시도교육청의 재정이 무상급식, 고교 무상교육 등 학교 공공성 강화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어서 교육당국과 학교 비정규직 간 갈등은 더욱 풀기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학교 급식대란]교실 몰아친 ‘무상 바람’…재정압박에 더 거세진 밥그릇 싸움

서울 무상급식예산 7년새 3배 쑥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 60%수준

제자리 걸음에 인상요구 빗발쳐


총파업 인원 2년전보다 7,000명↑

관련기사



진보정권 들어서며 무상교육 확대

교육청 재정 부담은 계속 늘듯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6만여 명이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석자들이 차별철폐 등을 촉구하는 결의 대회를 열고 있다./권욱기자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6만여 명이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석자들이 차별철폐 등을 촉구하는 결의 대회를 열고 있다./권욱기자


전국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린 이번 급식 대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2010년 이후 시도별로 무상교육 경쟁이 심화 되면서 교육청들이 제한된 재정으로 인건비 인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는 격화되고 있다. 진보 정책이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에 장애를 초래하게 된 것인데 고교 무상교육 등 학교현장의 ‘무상 바람’은 더 강해지고 있어 교육당국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은 앞으로 더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3일 교육 당국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예산안에서 무상급식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7.5%(232억원) 증액된 3,314억원을 책정했다. 지난해 6.6% 상승에 이어 2년 연속 무상급식에 높은 비중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7년 전인 2012년과 비교하면 무상급식 예산안은 1,380억원에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관할 학교 급식비 지원에 사용되는 무상급식 예산은 교육청이 50%를 부담하고 나머지 50%는 서울시와 지역 구청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따라서 실제 서울의 경우 올해 학교 현장에 투입되는 무상급식 비용은 6,6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0년 첫 교육감 직선제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무상급식은 이후 선거에서도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면서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어떤 교육감이 당선되든 상관없이 예산 비중을 경쟁하듯 키워왔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은 다르지 않다.





문제는 무상급식 예산이 늘어나는 것과 비교해 교육청이 학교 비정규직에 지급하는 비용은 제자리 걸음을 지켜왔다는 점이다. 교육 공무직인 학교 비정규직의 기본급 인상률은 정규직 공무원들과 맞춰져 있어 매년 2% 안팎에 그쳤다. 정규직 공무원 대비 열악한 임금 탓에 고용주체인 교육청이 기본급 대신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늘려왔지만 근속연수와 상관 없이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이어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올해 임금 교섭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가 6.24%의 높은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비연대 관계자는 “매년 기본급 인상을 목표로 교육 당국과 협상해 왔지만 달성된 적이 없다”며 “이 때문에 정규직 공무원 대비 60%에 불과한 임금 수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학교 비정규직 연대회의 총파업으로 단체 급식이 중단된 3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급식조실에서 영양교사 혼자 서류를 정리 하고 있다./이호재기자전국 학교 비정규직 연대회의 총파업으로 단체 급식이 중단된 3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급식조실에서 영양교사 혼자 서류를 정리 하고 있다./이호재기자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도 해가 갈수록 강화되고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3일 총파업에 참가한 국공립 유·초·중·고 학교 교육 공무직 공무원은 2만 2,004명으로 지난 2017년 파업과 비교했을 때 약 7,000명이나 늘었다. 시위를 주최한 민주노총 추산으로는 4만 명에 달해 두 배가 넘게 늘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급식 대란으로 피해를 입은 학교 수를 보면 2,572개교로 대규모 급식파업이 펼쳐진 지난 2014년과 비교했을 3배 가량 증가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14명의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탄생하는 등 진보적 교육정책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령하는 임금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자 교육당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급식조리원과 돌봄전담사 등이 소속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빵과 에너지바, 주스로 대체된 급식을 받고 있다. 이날 영양교사 포함 총 6명 중 비정규직 직원 5명은 파업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이호재기자급식조리원과 돌봄전담사 등이 소속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빵과 에너지바, 주스로 대체된 급식을 받고 있다. 이날 영양교사 포함 총 6명 중 비정규직 직원 5명은 파업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이호재기자


문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고교 무상교육 등 관련 정책이 강화되는 흐름이어서 교육 당국이 제한된 재정으로 학교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올해 2학기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해 2021년 전면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정부는 관련 예산을 올해에는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편성하고 내년부터는 50%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할 때 매년 2조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교육청 재정이 고교 무상교육으로 큰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고교 무상교육이 2학기부터 시행되면서 급하게 추가예산을 편성했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재정부담도 고민거리인 상황에서 학교 비정규직노조 측 요구를 들어주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경운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